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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강원국, 말이 글이 되고, 글이 말이 되게 하는 ‘국민 글쓰기 강사’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대통령의 글쓰기> 쓴 강원국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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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2-03-27 20:07 수정 : 2022-03-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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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류우종 기자

*강원국, 적자생존,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78.html

안경은 글쓰기 전투에 나서기 위한 갑옷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서재를 보여줬다. 출입문 옆 한편에 놓인 진열대에는 공공기관 등에서 받은 최우수 강사 상패와 청와대에서 받은 홍조근정훈장, 재직기념패 등이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옆 긴 벽면을 가득 채운 책꽂이에는 400여 권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는 “책이 3천 권도 넘게 있었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은데 더 사고 싶더라. 거의 중독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사 올 때 책을 모두 중고서점에 팔거나 버렸다. 지금은 글쓰기와 말하기에 관련된 책만 있다”고 했다.

-작가님의 책을 보면 ‘독서량이 많지 않다, 많은 사람 앞에 서면 떨린다’ 등 솔직한 고백이 많이 나옵니다. 본래 솔직한 성격인가요, 아니면 글쓰기 전략으로 봐야할까요?

“하나는 사람들이 저에게 기대 수준을 높여서 볼 때 제가 그것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 기대치를 낮춰놓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다른 하나는 독자들이 그런 찌질한 모습을 반기는 거 같아요.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나도 그런데’ 하면서 겸손하다고 봐주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그런 콘텐츠를 반기고 재미있어하니까 저도 그런 사례를 일부러 찾기도 합니다.”

그는 ‘글쓰기에 매혹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런 적은 없다. 글쓰기가 즐겁지는 않다”고 답했다.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글쓰기가 즐겁지 않다니. 다소 의외였다. 그는 “다만 책을 써서 많이 팔릴 때 사후적으로 성취감이 좀 있기는 하다”고 사족을 달았다.

-그럼 작가님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요.

“밥벌이예요. 주 수입원인 강의도 글쓰기와 책에 바탕을 뒀기 때문에 글을 안 쓰면 밥벌이가 안 되죠. 그런 한편, 글쓰기는 제가 성장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글은 이전보다 항상 나아지거든요. 제가 쌓아나가는 것도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숙성되고 성숙해지기 때문인 듯해요. 그런 것을 확인하는 기쁨이 있긴 해요.”

-글 쓸 때 ‘루틴’이 있나요.

“두 가지가 있었어요. 글을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쓰는데요. 카페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청하 한 병을 삽니다. 편의점 문을 열고 나와 반병을 마셔요. 나머지 반병은 빨리 다 쓰고 나서 마실 일종의 보상으로 남겨둬요. 이게 첫째고요. 둘째는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하고 안경을 닦아요. 평소에는 안경을 안 쓰고 글을 쓸 때만 착용해요. 안경은 저에게 글쓰기 전투에 나서기 위해 입는 일종의 갑옷 같은 거예요. 그러고나면 글쓰기에 대한 두려운 마음과 쓰기 싫은 마음이 잠재워져요. ‘이제 한번 써볼까’ 하는 쓸데없는 의욕 같은 것도 올라오고요. 그러면 이제 쓰기 시작하는 거죠.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써왔어요. 이미 지방간, 고지혈증, 콜레스테롤, 고혈압 등이 있었는데 지난 설 직전에 당뇨 진단을 받아서 술을 끊었어요. 그래서 첫째 루틴은 이제 바꿔야 하는 루틴의 공백 상태가 됐어요.”

강원국의 글쓰기 애장품. A4용지와 네임펜, 그리고 물병. 그는 이 세 가지 애장품을 늘 가방에 넣고 다닌다. 강연하기 전 일찌감치 강연 장소 인근 카페에 들러 네임펜으로 강연할 내용과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긁적긁적한다. 이 메모들을 모아뒀다 책을 쓰기 전에 쭉 훑어본다. 물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류우종 기자

1차 메모 씨뿌리기, 2차 메모 싹틔우기
-글쓰기에 도움이 된 책이 있나요.

“이어령 선생의 <세계문장대백과사전>이요. 1990년대 대우증권 홍보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이 책이 사무실에 있었어요. 이 책이 없었으면 글쓰기에 입문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것에 의지해서 사보에 글을 쓰는 등 여러 가지 글쓰기 작업을 했거든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이 책은 저에게 인터넷 구실을 했어요.”

-글 잘 쓰는 팁을 주신다면요.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결국은 글감이 문제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메모해야 합니다. 둘째는 그걸 표현하는 데 어휘력과 문장력이 필요한데요. 저는 늘 포털 국어사전을 열어놓고 글을 쓰는 것으로 어휘력과 문장력을 키우고 글의 완성도도 높여요.”

-마음속에 담고 있는 작가가 있나요?

“유시민 작가예요. 제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제가 벤치마킹하고 롤모델로 삼기에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분이야말로 글도 되고 말도 되는 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유시민 작가가 저와 함께 한, 한 방송에서 글쓰기에 대해 책을 쓰거나 강의하는 것은 자신보다 제가 더 잘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웃음)”

-글쓰기 공부를 위해 추천할 만한 문장가가 있나요?

“김훈 작가요. 단문 중심의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을 쓰시잖아요. 그의 문체는 문학적 글뿐 아니라 저같이 실용문을 쓰는 데도 참고할 만한 좋은 문체인 것 같아요.”

그는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서 “3년 가까이 (메모) 1700개를 썼다. 책을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책을 쓰고 싶어졌다. 그렇게 <강원국의 글쓰기>가 세상에 나왔다. 결국 메모가 책이 된 것이다. 어떤 주제든 메모를 1천 개 정도 하면 책을 쓸 수 있다”고 적었다.

-‘책이 되는 메모’ ‘적자생존’(적는 자가 살아남는다)을 강조했는데요. 작가님의 메모 노하우를 공유해줄 수 있나요.

“일차적으로는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메모장에 메모해요. 잠들기 전이든 아침 반신욕을 할 때든 수시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단어, 키워드 수준의 메모를 합니다. 일단 씨를 뿌려놓는 거예요. 이 단계에서 멈추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면 이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싹을 틔워봐야 해요. 아내나 지인들에게 말해보거나 혼자 산책하는 경우 살이 보태지고 정리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차 메모를 해요. 문장이나 문단 수준으로요. 이게 글이 되고 말이 되는 메모예요. 저는 지난 8년 동안 1만2천 개의 2차 메모를 했는데 이것이 결국 제가 쓴 모든 책과 강의의 바탕이었어요. 평소 일상에서 이 레고 블록 같은 메모를 해놓지 않으면 블록 없이 레고를 만들 수 없듯, 글쓰기도 강연도 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강원국의 글쓰기>는 네이버 블로그에 2년 반 동안 쌓아놓은 1700개의 메모로 쓴 거예요. 필리핀 세부에 강의하러 갈 일이 있었어요. 그때 강의 외에 이 메모를 다 출력해 가져가서 분류 작업을 해야겠다고 목표를 세웠어요. 그래서 1700개 메모를 50개 덩어리로 분류했어요. 이 50개 덩어리를 가지고 책을 한 권 쓴 거죠. 요즘에는 티스토리(카카오 블로그)에 2차 메모를 해요. 그리고 강연을 다닐 때 늘 제 가방에 A4용지 20장 정도와 네임펜을 가지고 다녀요. 이 두 가지가 저의 글쓰기 애장품이죠. 강연 전 강연장 인근 카페에서 강연할 내용과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여봐요. 이 메모들도 모아놓았다가 책을 쓸 때 쭉 한번 넘겨봅니다.”

그의 네이버 블로그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작성된 1755개의 한두 단락짜리 메모가 빼곡히 쌓여 있다. 각 메모에는 댓글도 20~30건씩 달려 있다. 메모에 대해 지인들과 소통한 흔적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흘 전인 2022년 3월6일치 그의 티스토리엔 ‘리더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1. 생명, 안전 지키기, 평화 2. 먹여 살리기, 양극화, 빈부격차 3. 통합하기, 자긍심 4. 밝은 미래 이끌기, 위험 대비, 위기 대응, 과학기술, 교육’이라고 적혀 있다. 다음 책의 주제와 연관되는 게 아닐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제 연설에 사용한 친필 메모(왼쪽)와 직접 수정한 연설문 낭독본. 류우종 기자

허기를 느끼고 바보로 남으세요
-다음 책 출간 계획은 어떤가요.

“리더십에 대한 책을 낼 계획입니다. 정치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에서 임원, 부장, 젊은 팀장들도 다 리더니까요. 리더는 어떻게 쓰고 말해야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될 거예요. 2022년 7~8월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연설 전문가인 그에게 해외의 명연설문을 한 개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2005년 6월12일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한 미국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문을 제시했다. 잡스가 큰 좌절을 딛고 일어선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감동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유명한 연설이다. 특히 잡스의 체험이 응축된 “Stay Hungry, Stay Foolish”(계속 허기를 느끼고, 계속 바보로 남으세요)라는 마지막 짧은 문장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잡스가 자기 연설을 했잖아요. 그런 연설이 좋은 연설 같아요. 그러니까 연설은 크게 지식과 정보로, 자기 생각과 의견으로, 자기 경험과 경험에서 깨달은 바로 할 수 있는데요. 세 번째 연설이 듣는 사람에게 가장 와닿고 공감되고 재밌는 연설인 거 같아요. 잡스의 연설에는 지식과 정보, 자기주장 이런 거 없어요. 살아오면서 자기가 깨달은 것을 담담하게 얘기하잖아요.” 잘 갈아놓은 토지와 같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글쓰기와 말하기 방법을 전하는 강원국 작가다운 ‘원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원국 자택의 서재. 류우종 기자

에필로그
저공비행. 강원국 작가의 책을 읽고 그의 말을 들으며 떠오른 단어다. 잔치에 가서 상석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는 내용이 성경에 나온다. 그 지침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그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김우중 전 회장 등 거인들의 ‘입’을 위한 ‘손’으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선 저는 혼나는 걸 되게 두려워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요. 그래서 혼나지 않기 위해 성실하려 노력합니다. 이와 반대로 인정받고 칭찬 듣고 싶은 마음이 또 하나 있어요. 하지만 칭찬을 늘 기대하지는 않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한테도 칭찬을 거의 못 받았어요.(웃음) 아무튼 이 둘 중에 혼나지 않는 것이 디폴트값이고, 가끔 칭찬을 기대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듣기와 읽기’ 역량도 있어요. 이건 저의 독서량 때문이 아니라 ‘눈치’ 때문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대학 때까지 친척 집이나 아버지·어머니 친구 집에서 많이 살았어요. 이분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외려 잘해줄수록 눈치를 보게 돼요. 그러면서 읽기, 듣기 능력을 키운 것 같아요. 나 하고 싶은 대로 산 게 아니라, 늘 상대 입장과 의중을 헤아리고 맥락을 파악하고 맞춰주며 산 거죠. 아는 게 많고 자신의 문체를 갖는 등 글재주가 좋은 사람은 스피치라이터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낙천가. 그에 대해 떠올리는 또 하나의 단어다. 예컨대 그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잣말을 즐기신다고요. “10권의 책을 쓰고 100만 부를 팔 것이다. 글쓰기, 말하기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혼잣말을 하신다고 책에 적으셨는데요. 절반 이상 이뤄진 거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 혼잣말을 하세요.

“<강원국의 말빨글빨> 유튜브 구독자가 지금 9500명인데요. ‘구독자 10만이 될 것’이라고 말해요. 이제 유튜브를 좀 열심히 해보려고요. 나이도 환갑이라 강연을 지금처럼 활동적으로 하기는 어려워질 테고, 또 앞으로는 비대면 시대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하니까요. 아무튼 구독자 10만, 언제 되든 될 거라고 믿어요. 고3 때도 무슨 대학, 무슨 과 학생이 될 것이라고 혼잣말했는데 이뤄졌거든요.(웃음)”

그의 말대로 왠지 그런 날이 올 것 같다. ‘베스트셀러 작가’에 더해 ‘파워 유튜버’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추가될 날이.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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