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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력을 응원한 침묵의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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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2-02-20 04:39 수정 : 2022-02-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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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S

<한겨레21>의 젊은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합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3분의 침묵이 이어졌다. 2022년 2월15일 베이징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경기, 한국의 방송 3사 중계진은 러시아 피겨선수 카밀라 발리예바(16)의 연기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런 해설을 하지 않았다. 그가 도핑 양성반응이 나왔는데도 출전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발리예바 도핑 사건은 2021년 12월 러시아피겨선수권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리예바가 이때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약물 성분인 트리메타지딘이 발견됐다. 이 약은 원래 협심증 치료제지만, 운동선수의 신체적 효율을 높이는 효과가 인정돼 2014년부터 금지약물로 지정됐다. 발리예바의 샘플은 2021년 12월에 수집됐고, 도핑 검사 결과는 러시아가 베이징 겨울올림픽 피겨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한 다음날인 2022년 2월8일 확인됐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발리예바가 미성년자로 세계반도핑규약(WADC)에 따른 보호대상자이고, 올림픽 출전 이후 양성 판정을 받은 게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해 개인전 출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발리예바 사건은 여러 이슈를 함께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다. 먼저 그를 지도하는 예테리 투트베리제 코치의 혹독한 지도 방식이 알려졌고, 이 과정에서 코치가 호르몬 차단제 등을 사용해 피겨 선수들의 자연스러운 신체 발달을 억제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출전이 가능한 나이 제한을 ‘만 15살’로 계속 두는 게 맞냐는 논쟁도 벌어졌다. 미성년자일 때 올림픽만 바라보며 무리하게 몸을 만들어 단 한 번만 올림픽에 출전한 뒤 부상 등으로 10대 후반에 은퇴하는 일이 러시아에서 반복됐기 때문이다.

발리예바가 이번 올림픽에서 얼마나 훌륭한 성적을 거두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에 따라 시상대에 올라가지 못한다. 공식 기록으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조처만으로는 불쾌한 찝찝함이 달라붙는다. “도핑 위반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원칙이, 무엇보다 “모든 선수의 노력과 꿈은 똑같이 소중하다”(김연아)는 점이 훼손됐기 때문. 그의 어마어마한 4회전 점프를 넘어서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해왔을 다른 선수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박다해 온갖 것에 관심 많은 잡덕

관심분야: 여성, 정치, 사람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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