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무엇이 ‘폭력적’인가
십수 년째 제정되지 못한 ‘스토킹처벌법’은 또 어떤가. 스토킹을 ‘선량한 풍속 또는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를 다루는 경범죄로 처벌해온 것이나, 가정폭력처벌법의 주요 목적으로 ‘가정 보호’를 둔 것도 잘 알려진 예다. 모두 폭력이 무엇인지, 왜 나쁜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총체적으로 왜곡한다. 이 오래된 문제를 바꾸는 데 언론이 앞장서도 부족할 판에, 뜬금없이 키스가 문제라니? ‘벽치기’나 ‘기습키스’ 같은 것을 남자의 ‘박력 있는 애정 표현’으로 재현해왔던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생각하면, 지상파 방송이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이 아닐까 고민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수많은 이성애 키스 장면이 아닌가? 물론 배우자가 스킨십을 시도하면 “가족끼리 왜 이래?” 하며 피한다는 중년 부부의 농담이 드러내듯, 실제로는 이성애자라고 뭐 대단히 열심히 이성애를 하며(?) 사는 것도 아니다. 이성애가 ‘정상’이라는 관념은, 오직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차별한 것의 결과물일 뿐이다. 차별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내가 가장 ‘꽂힌’ 것은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는 대목이다. 공적인 책임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특별한 의도가 없다’는 말을 마치 중립성과 무고함의 표지처럼 사용하는데, 엄청난 오해라고 생각한다. 구조화된 차별이 재생산되는 데는 원래 ‘특별한 의도’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직장 내 성희롱 판단 기준에 “행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라는 문구가 들어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오직 강자만이 ‘특별한 의도가 없었다’는 말을 쓴다. 반면 약자는 일거수일투족을 해명하며 산다. 키스가 문제가 아니라 동의 없는 키스가 문제다. 이 당연한 문장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 바로 지배체제다. 강자의 폭력을 키스로 둔갑시키는 것은, 약자의 키스를 폭력으로 둔갑시키는 것과 짝을 이룬다. 동성 간 키스를 문제 삼는 동안, 이성애 관계에서의 폭력은 ‘남자의 본능’ ‘호감 표시’라며 보호된다. 그러니 SBS 쪽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차별과 혐오가 ‘특별한 의도 없이’ 공기처럼 자리잡은 사회에서, 적어도 지상파 방송이라면 그 공기를 바꾸는 데 기여하겠다는 ‘특별한 의도’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은지.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옥희살롱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