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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 혈관에는 푸른 피가 흐른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아주 잘한 사람,
‘박찬호 양아버지’ 전 LA 다저스 감독 토미 라소다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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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1-01-16 20:36 수정 : 2021-01-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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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양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토미 라소다 감독이 2021년 1월7일 밤(현지시각) 93살의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박찬호 인스타그램 갈무리/ 연합뉴스

2013년 미국 방송 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나는 다저스타디움이 좋아요. 가끔은 여기 앉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지요. 지구상의 ‘푸른 천국’(블루 헤븐)이거든요. 종종 사람들에게 ‘이봐, 천국으로 가려면 다저스타디움을 통해야 할걸’이라고 말해왔답니다.”

한낱 메이저리그 구장일 뿐인데 ‘천국의 문’이라니. 하긴 구단 연고지가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A)니까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지만. 2021년 1월7일 밤(현지시각) 93살의 일기로 하늘 위 그라운드로 떠난,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은 그토록 다저스를 사랑했다. 짧은 선수 시절부터 스카우트, 마이너리그 감독, 메이저리그 사령탑 그리고 구단 홍보대사에 이르기까지 무려 71년 동안 ‘다저스맨’으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오죽하면 “내 혈관에는 ‘푸른 피’(일명 ‘다저 블루’)가 흐른다”라고까지 했을까.

다저스타디움 마운드에 묻히고 싶었던 남자
당시 인터뷰를 보면 그는 사후 다저스타디움 마운드 밑에 묻히고파 했다. (물론 현실상 그럴 수 없지만) 이유는 분명했다. 선수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팠다. “어느 어린 왼손잡이(그는 현역 때 왼손잡이 투수였다)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아마 그는 이런 목소리를 들을 거예요. ‘천천히 해. 집중하고. 넌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믿어야 해’라고 말하는. 선수가 의아해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어! 누구지?’ 하면 대답해줘야죠. 마운드 밑에 묻힌 ‘토미 라소다’라고.”

국내에는 ‘박찬호의 양아버지’로 더 유명한 라소다 전 감독. 그가 ‘양아들’로 삼은 이는 비단 박찬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재능 있는 어린 유망주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하면서 아낌없는 정성과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가 다저스 감독으로 재임하던 21년(1976~96년) 동안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9명이나 배출한 것이 그 증거다.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프로야구 최고 권위기관의 기관장)가 애도 성명에서 허투루 “토미(라소다)는 멕시코, 도미니카공화국, 일본, 한국 등지에서 온 다저스 선수들을 모두 환영했다. 이는 야구를 더 강하고, 더 다양하고, 더 나은 경기로 만들었다”라고 했겠는가. 그런 면에서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첫 지도자로 라소다 전 감독을 만난 것은 참 행운이었다고 하겠다. 그가 있었기에 메이저리그 124승의 박찬호가 있었다.

라소다 전 감독은 현역 시절에는 그다지 빛을 못 본 선수였다. 트리플A(마이너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야구)에선 최고 수준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니었다. 3시즌(1954~56년) 동안 브루클린 다저스 등에서 26경기(58⅓이닝 투구)에 등판했지만 단 1승을 거두지 못하고 4패만 당했다. 평균자책점 6.15. 그러나 트리플A에선 6시즌 동안 10승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2016년 은퇴할 때까지 67년간 다저스 전담 중계를 했던 빈 스컬리는 이렇게 말했다. “토미에 대해 두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는 열정적이었고 결단력이 대단했다. 제한된 능력 안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밀어붙였다. 메이저리거가 될 만한 재능이 없었을 뿐 그가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빅리그 무대에 대한 갈증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기에, 라소다는 지도자가 됐을 때 어린 선수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더그아웃의 치어리더를 자처하며 선수들을 다독이지 않았을까.

그 때문에 야구장 찾는 팬들
라소다 전 감독은 뛰어난 전략가나 혁명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입담과 친화력으로 미국 대통령부터 리틀야구 선수들까지 지역사회 누구와도 쉽게 어울렸다. “토미 라소다로 인해 연간 수십만 명이 야구장을 더 찾았다”라는 말까지 있었다. 실제 다저스는 라소다 감독 시절 ‘관중 3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가난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서툰 영어를 구사하며 온갖 궂은일을 다 했던 라소다 전 감독은 야구장 안이나 밖에서 생존 전략을 알았다. 나름 성적도 괜찮았다. 월드시리즈 우승 2회(1981년, 1988년), 내셔널리그 우승 4회 등의 성적을 내며 사령탑에서 물러난 다음해에 곧바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가 남긴 어록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은, 앞서 언급한 “내 혈관에는 푸른 피가 흐른다”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이 밖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언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말.

“성공의 유일한 문제는 실패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압박이란 단어를 오용한다.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실패를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가능과 가능의 차이는 사람의 결단력에 달렸다.”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복할 운명에 처한다.” “감독이란 자리는 비둘기를 손에 쥐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너무 꽉 잡으면 비둘기를 죽이고 너무 느슨하게 잡으면 비둘기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당신이 직업을 사랑한다면 한평생 일하지 않는 것이 된다.”

다저 블루의 조명을 켠 공항과 시청
그는 71년 동안 다저스맨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했다. 심지어 아주 많이 잘했다. 그가 다저스를 사랑한 만큼 다저스와 LA 도시도 그를 사랑했다. 그의 사망 직후 LA 국제공항과 LA 시청 등은 푸른 눈물과도 같은 다저 블루의 조명을 켰다. 반세기를 관통한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그가 32년 만의 다저스 우승을 보고 눈감을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운명인 듯하다. 다저스는 라소다 감독 시절인 1988년 우승 이후 처음으로 2020년 10월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유명 칼럼니스트 톰 버두치의 말로 글을 갈무리한다. “자기 일을 그토록 오래 사랑할 수 있던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야구 인생을 산 것이 아닐까.”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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