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창업하고 매출이 흑자로 돌아서는 시점은 언제일까. 한 권의 대박으로 몇 년 살림을 꾸리는 출판사도 있고, 수십 종을 내야 매출이 안정되는 출판사도 있다. 초기 자본금이 수천만원은 있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달랑 책 한 권 만들 돈으로 시작한 우리가 수익을 바랄 순 없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종일 일해도 1천원 한 장 못 버는 날이 더 많았다. 왜 일할수록 우리는 가난해지는 걸까. 일하면 당연히 돈을 받는 임금노동의 인과 밖으로 나오자 낯선 세계가 열렸다. 낮엔 회사 일을, 밤엔 편집 알바를 했다. 돈 벌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렇다면 돈도 안 되는 출판에 어떤 동기부여를 할까. 우리는 책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책 만들기는 일종의 돌봄이다. 편집자는 작가가 글을 잘 쓰도록, 디자이너가 좋은 결과물을 내도록, 인쇄기가 색을 온전히 구현하도록 돌보는 사람이다. 돌봄은 잘해도 티가 안 나고, 조금만 못해도 필요 이상의 죄책감을 주는 노동이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돌봐도 아기는 젓가락을 콘센트에 꽂고, 환자는 병이 악화되고, 청소년은 집을 나가버린다. 성과를 내기 어려운 책이라는 매체 앞에서 편집자는 자기비판에 시달린다. 저임금 돌봄노동자를 괴롭히는 또 다른 압력은 ‘애정의 강요’다. 애정은 돌봄의 필요조건이지만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다. 창업자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창업자는 꽤 오랫동안 ‘무임금 돌봄노동자’다. 책을 사랑해서 일하기도 하지만, 책을 사랑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더 있는 힘껏, 책을 사랑하기로 했다. 하루에 한 부가 팔리든 백 부가 팔리든 그 책만 바라보며 몇 달을 살아야 한다면 더 깊이 사랑하자. 팔리면 좋겠지만 안 팔려도 부끄럽지 않을 책을 만들자. 어떻게든 3년만 버텨보자. 3년 뒤에도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만두자. 알바비 못 받는 알바를 때려치우듯 훌훌 털어버리자. 괜찮다. 우리에겐 책이 남으니까. 책만 남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랴. 좋아서 하는 일인데.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두 번째 책이 입소문을 타면서 상황이 나아졌다. 세 번째 책은 여러 서점에서 메인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의 책, 인생 책이라는 독자의 메시지도 늘었다. 물론 안정기는 아니다. 꾸준히 신간을 내야 한다. 10종 출간. 다다서재의 1차 목표다. 작은 책이나마 10종이 번갈아 움직이면 책을 만들어 돈을 버는 새로운 인과가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다음 책은 치매에 걸린 아흔 할머니를 직접 돌본 20대 손녀의 기록이다. 치매, 가족 돌봄, 가부장제의 여성 노동을 말한다. 이어서 나올 책은 다발성전이암을 앓은 철학자가 사망 보름 전까지 의료인류학자와 주고받은 서간집이다. 두 여성학자는 삶과 죽음, 몸과 병,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돌봄’에 대한 책을 널리 기획하고 있지만, 다다서재의 책은 독자를 돌보거나 위로하지 못한다. 힐링도, 힙한 감성도, 편안한 농담도, 아쉽지만 우리의 영역은 아니다. 단언할 수 없게 하고 때론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조차 돌아보게 하고 꽤 자주 독자를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이런 책이 좋은걸. 치열한 시장이지만 어딘가에는 이런 출판사의 자리도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슬쩍 봐도 양지바른 자리는 아니지만.
언제든 그만두자고 말하며 오늘도 힘껏 버티고 있다. 그저 조금 고된 알바를 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만든다. 어쩌면 인생을 걸고 하는 마지막 알바다.
다다서재 김남희 편집장*‘책의 일’은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의 ‘진격의 독자’ 편으로 이어집니다. 그간 수고하신 김남희 편집장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