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NH뮤직 이주엽 대표가 쓴 가사비평집 <이 한 줄의 가사>. 서정민 기자
“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에 또다시 살아나/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줘” 헤어진 사랑에 대한 마음이 식어가지만 가끔씩 찬 바람 불고 외로워질 때면 네가 생각난다는, 뻔할 만큼 보편적인 내용을 어찌 이리 특별한 노랫말로 조탁할 수 있을까. 그 비결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졸업 발표회장으로 향했다. 마음 깊이 숨어 있는 노랫말 그곳엔 7명의 1기 졸업생이 있었다. 같은 곡에 자신만의 가사를 붙여 직접 노래하는 방식으로 발표회가 진행됐다. 큰 주제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각자 노래하는 사랑의 형태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모두 달랐다. 누구는 엄마와 할머니 얘기를 했고, 누구는 어항에서 거친 바다로 나아가는 물고기 얘기를 했다. 그 안에는 세상에 하나뿐인 서사와 감동이 있었다. 그들은 노랫말을 완성하기까지 짧지 않은 숙성의 기간을 거쳤다고 했다. 약물·알코올 중독자들이 모여 자기 고백을 하는 영화 속 장면처럼 서로 속마음을 꺼내어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고 했다. 오래전 내 경험을 떠올렸다. 그때 난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러니 공허한 가사가 나올밖에. 하고픈 말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잘 익은 노랫말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전 <이 한 줄의 가사>라는 책을 읽었다. 재즈·크로스오버 색깔이 짙은 레이블 JNH뮤직의 이주엽 대표가 쓴 책이다. 신문기자를 하다 음악이 좋아 직장을 관두고 레이블을 차린 그는 18년 동안 묵묵히 한길을 걸어왔다. 그는 작사가로도 활약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벚꽃지다> 가사를 그가 썼다.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 한세상을 지낸 슬픔 날리네/ 눈부신 날들 가네 잠시 머물다 가네/ 꽃그늘 아래 맑은 웃음들 모두 어디로 갔나/ 바람 손잡고 꽃잎 날리네/ 오지 못할 날들이 가네/ 바람길 따라 꽃잎 날리네/ 눈부신 슬픔들이 지네”라는 노랫말은 한 편의 시다. 언어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그가 이제야 낸 첫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노래의 꿈은 문학과 음악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런 노래를 찾아다녔다. (…) 가사는 지면이 아니라 허공에서 명멸한다. 써서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르는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운명이다. 읽지 말고, 듣고 불러봐야 안다. 그게 얼마나 좋은 가사인지를.” 또 하나를 배웠다. 가사는 눈이 아니라 귀와 입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여기서 다룬 40여 곡을 귀로 듣고 입으로 불렀다. 노랫말의 위대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노랫말을 찾아서 언급하고 싶은 노래가 차고 넘치지만, 지면 제약으로 한 곡만 소개할까 한다. 1980년대 조동익·이병우가 결성한 포크 듀오 어떤날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다. 이병우가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이 곡은 이주엽의 표현대로 “비어 있으면서도 충만하고, 소박하면서도 풍요롭다”. 노랫말을 옮겨 적는 대신 지금 당장 들어볼 것을 권한다. “7분이 넘는 이 노래가 끝나면 일요일이 저무는 게 아니라, 한 계절이 저물고 한세상이 닫히는 듯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위대한 가사뿐 아니라 이주엽의 정갈한 미문에도 질투를 넘어 경외심이 생긴다. 나로선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절망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나의 노랫말을 써볼까 한다. 작사의 시대 신입생으로 들어가볼까 생각 중이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