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첫 내한공연을 펼치고 있는 밴드 유투. 로스 스튜어트 제공
엘살바도르 내전, 영국 탄광 노동자… 유투의 이날 공연은 ‘더 조슈아 트리 투어 2019’의 하나다. 유투를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급 밴드로 올려놓은 앨범 ≪더 조슈아 트리≫(1987)의 30주년을 기념해 2017년 시작한 투어의 연장이다. 이 때문에 ≪더 조슈아 트리≫의 전 곡을 차례로 연주하는 흔치 않은 무대를 연출했다. 앨범의 첫 곡 <웨어 더 스트리츠 해브 노 네임>을 연주하자 스크린에 사막의 길을 천천히 달리는 영상이 나왔다. 마냥 서정적인 곡 같지만, 여기에도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선 거리 이름으로 사는 이의 계층, 종교 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미국 뉴욕은 맨해튼과 할렘에 사는 이들의 인종과 계층이 다르고, 로스앤젤레스에는 코리아타운, 차이나타운 등이 있다. 우리는 어떤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도봉구 쌍문동은 동네 이름만으로도 격차를 암시한다. 보노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가서 이름 없는 거리를 보고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다. ‘거리에 이름이 없는 곳’은 보노의 이상향을 상징한다. 앨범의 네 번째 곡 <불릿 더 블루 스카이>는 1980년대 엘살바도르 내전 당시 정부군을 지원하며 무기를 판 미국 정부를 비판한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를 때 스크린에는 성조기 앞에서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철모를 쓰는 영상이 이어졌다. 미국이 지금도 전세계 평범한 시민들을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겨냥한 것으로 읽혔다. 디 에지가 보틀넥 주법(병목을 잘라 만든 듯한 ‘슬라이드 바’를 손가락에 끼고 기타 지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연주하는 주법)으로 연주한 기타 솔로가 유독 불길하면서도 구슬프게 들렸다. 여섯 번째 곡 <레드 힐 마이닝 타운>은 1980년대 영국 대처 정부의 폐광 조치에 맞서 탄광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벌인 사태를 담았다. 이 노래에는 원래 브라스(관악기) 사운드가 없지만, 공연에선 브라스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브라스 사운드를 넣었다. 마치 유투와 탄광 마을 사람들이 합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연대의 음악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앨범 마지막 곡 <마더스 오브 디스어피어드>가 나올 때 스크린에는 촛불을 든 어머니들이 등장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실종되거나 숨진 젊은이들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며 보노는 무릎을 꿇었다. 어느새 관객도 휴대전화 불빛을 켜고 흔들며 촛불을 든 어머니들과 보노와 교감했다. 남북으로 나뉜 아일랜드와 한반도에 평화를 공연의 맨 마지막 곡은 <원>이었다. 밴드 멤버 사이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즈음 이들은 새 앨범 작업을 위해 독일 베를린의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는 걸 보며 밴드도 화합을 이뤘다. 그때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 <원>이다. 보노는 <원>을 부르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남북으로 나뉜 우리의 땅(아일랜드)과 역시 남북으로 나뉜 여러분의 땅(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 북쪽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전합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우리가 하나 되어 노력할 때 찾을 수 있습니다.” 노래가 끝나갈 즈음 스크린에 태극기가 나왔다. 순간 생각했다. 다음에 유투가 또 온다면 비무장지대(DMZ)에서 한반도기를 휘날리며 <원>을 불렀으면 좋겠다고.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하나 되어 ‘떼창’을 했으면 좋겠다고.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