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7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잔디구장에서 열린 ‘강원락페스티벌’에서 미국 데스코어 밴드 ‘본 오브 오시리스’가 연주하고 있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
나도 궁금했다. 8월17일 홀로 먼 길을 나선 건 그래서다. 정오께 서울 영등포구 집에서 인제까지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무려 4시간 뒤 도착으로 나왔다. 토요일이니 놀러 가는 차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엄두가 안 나 출발 시간을 늦췄다. 오후 3시가 좀 넘으니 2시간40분으로 줄었다. 출발하면서 메탈리카 3~5집 음반을 챙겼다. 고등학생 때 푹 빠져 지금도 ‘최애’로 꼽는 헤비메탈 밴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을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 또한 나이 들면서 어느새 록과 멀어진 록키드 중 하나였던 것이다. “라인업 좋고 음향 좋고 사람이 없네” <마스터 오브 퍼페츠> <오라이언> <원> <엔터 샌드맨> <새드 벗 트루> 같은 곡을 평소보다 볼륨을 1.5배로 올리고 듣다보니 잠들어 있던 ‘록부심’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메탈리카 덕분인지 가는 길이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6시께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왕년의 록키드 제이(J)가 반겨주었다. 한때 음악 관련 일을 하다 지금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는 그는 아예 가족을 데리고 강원도로 여행을 왔다. 물론 주목적은 강원락페스티벌이었다. “라인업 좋고 음향도 좋고 쾌적하고 다 좋은데, 사람이 없네.” 그의 말대로 드넓은 잔디밭은 한산했다. ‘본 오브 오시리스’가 공연을 시작하니 그나마 사람들이 좀 모여들었다. 그래도 수백 명 수준이었다. 관객 수는 적었지만 다들 일당백처럼 놀았다. 웃통을 벗고 몸끼리 부딪치는 ‘슬램’을 하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듯 팔다리를 크게 휘두르며 리듬을 타는 ‘모싱’을 하는 이들이 한구석을 차지했다. 보기만 해도 덩달아 흥분됐다. 언젠가부터 록페스티벌에 가도 멀찍이서 조용히 감상하던 나였다. 왕년에 진흙탕에서 뛰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흐릿했다. 하지만 이날은 왠지 무대를 향해 전진하고 싶어졌다. 사람이 많지 않아 무대 앞 펜스까지 파고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무대 가까이 가본 건 처음이었다. 거기까지 들어가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슬램이나 모싱까지 할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헤드뱅잉과 점프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영 어색했다.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봤지만 목은 뻣뻣하기만 했다. 옆에서 보던 제이는 “헤드뱅잉 점수가 시마이너스(C-)야” 하고 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흔들고 뛰다보니 어느 순간 정신줄이 느슨해지며 몸이 부드러워졌다. 몸을 어떻게 움직일지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서 움직이는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제이의 눈에는 여전히 시마이너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내 마음은 에이플러스(A+)였는걸. 하늘에선 때때로 물이 쏟아졌다. 흥을 돋우기 위한 무대장치였다. 옷이 푹 젖고 옆 사람에게 발을 밟혀 하얀 캔버스화가 시커멓게 됐지만 상관없었다. 그제야 떠올랐다. 10여 년 전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에서 비 내리는 날 진흙탕 속에 박혀 나오지 않는 샌들을 벗어던지고는 맨발로 펄쩍펄쩍 뛰던 기억이. 그 시절의 젊음, 열정, 일탈의 짜릿함, 해방감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래! 록페스티벌은 이 맛이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번에는 밴드 보컬리스트가 관객 사이로 뛰어드는 ‘스테이지 다이빙’을 했다. 재빨리 그쪽으로 가서 그의 등을 손으로 받쳤다.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생애 첫 경험이었다. 되살아나는 젊은 시절 록페의 추억 이날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헤드라이너는 외국 밴드가 아니라 전인권이었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사람들과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걱정과 아픈 기억일랑 날려버리고 지나간 감흥을 되찾았다. 새벽에 차를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좀 피곤해도 가길 참 잘했다고. 록페의 시대는 저물었다지만, 나의 록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