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난 1년은 너무 바빠 ‘설산’을 찾지 못했다. 문득, 눈보라 소리가 듣고 싶어 방법을 궁리하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았다. 검색어는 ‘눈보라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음향)’. 수십 개의 영상이 쏟아졌다. 짧게는 10∼20분에서 길게는 10시간까지 눈이 내리는 풍경을 담은 영상이었다. 집에 있는 프로젝터에 연결해 화면을 천장에 띄웠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고화질 영상을 보며 실제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 있으니 눈보라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요즘처럼 더워지기 시작한 날에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그렇게 나만의 ‘자연의 소리를 찾아서’가 시작됐다. 유튜브엔 정말 거의 모든 ‘영상’과 ‘소리’가 다 있었다. 눈보라 소리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야외 텐트 안에서 듣는 소리, 집 안에서 장작을 태우는 벽난로를 보며 듣는 소리, 숲에 눈이 소복이 쌓이는 소리 등 다양했다. 이외에 청계산 계곡물 소리, 제주도 세화해변 파도 소리, 보성 녹차밭 바람 소리, 절 풍경 소리, 늦가을 서울숲 빗소리 등 우리나라 자연의 소리도 있다. 옆에 앉은 회사 동기가 휴가로 스위스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 검색해보니 스위스 기차여행 영상도 있었다. 나는 사무실에서도 문득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유튜브로 검색했다. 글을 쓸 땐 주로 빗소리를 듣는데, 두 가지 소리를 조합하기도 한다. 비가 오는 카페 테라스에서 보사노바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고 싶으면 빗소리 영상과 보사노바 영상을 동시에 튼다. 파도와 음악 소리 조합과, 비와 풍경 소리 조합도 좋다. 그렇게 거의 모든 계절, 거의 모든 장소, 거의 모든 날씨를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얼마 전, 강가에 산책을 나갔다가 반짝이는 야경을 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매일 보며 살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꺼내 부동산 중개 앱을 켜니 강이 보이는 아파트 가격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문득 유튜브가 떠올라 검색했다. ‘강’ ‘야경’ ‘창문’. 세 단어를 조합하니 미국 시애틀 앨카이 해변의 잠 못 이루는 야경이 나왔다. 오늘은 벽에다 이 영상을 틀고 잠을 청해야겠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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