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30주년 콘서트’ 무대에 선 김종진은 세상을 떠난 친구 전태관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이들은 당시 음악인 스스로 가격을 정하고 판매가의 80%를 돌려받는 음원 사이트 ‘현대카드 뮤직’과 앨범 단위로만 내려받을 수 있는 네이버뮤직 ‘뮤직 플러그’에만 음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음원이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안 팔려도 상관없어요. 얼마 안 팔려도 세상을 바꾼 물건은 많으니까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음원 시장 트렌드가 바뀔 수도 있다고 봐요. 인디밴드를 비롯한 후배 음악인들이 음악만 하고도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우리 같은 선배들이 깃발 들고 나서야 합니다.” 김종진이 말했다. 이들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문제의식에 적잖은 이가 공감했다. 이후 디지털 음원 시장은 느리지만 조금씩 개선됐다. “1996년 전태관은 코스닥을 사랑했죠” 존경하던 음악인과 깊은 얘기를 나눈 뒤로 나는 둘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공연을 찾아다니고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2012년 그해 전태관이 신장암 발병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암 초기였고 수술도 성공적으로 잘 끝났다 했다. 하지만 2년 뒤 암세포가 어깨로 전이됐고,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전태관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김종진에게서 소식을 전해들을 뿐이었다.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말에 한때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2018년 12월27일 밤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지금 데뷔 30돌 공연을 하고 있다. 1월16~27일, 2월13~24일 서울 서교동 구름아래 소극장에서 모두 30차례 ‘봄여름가을겨울 30주년 소극장 콘서트’를 한다. 해당 기간에 월요일과 화요일을 빼고 매일 열리는 장기 공연이다. 나는 지난 1월24일 9회 공연을 찾았다. 김종진은 첫 공연에선 데뷔한 해인 1988년 얘기를, 두 번째 공연에선 1989년 얘기를 했다고 했다. 9회 공연에선 1996년 얘기를 할 차례였다. “응답하라 1996, 그해엔 코스닥이 처음 개장했어요. 전태관이 코스닥을 그렇게 사랑했죠. 틈만 나면 단말기 열고.”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해 우린 아주 펑키한 곡을 발표했어요. 《바나나 쉐이크》 앨범, 망했어요. 케이스를 은색 알루미늄으로 주문 제작했는데, 납품가가 비싸서 팔릴수록 손해였어요. 방송국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 출연하러 갔다가 사운드 체크 후 시간이 남아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서 태관이와 둘이서 카드를 쳤는데, 그게 높은 사람 귀에 들어가 그다음 주 방송 정지 먹었어요. 폭망했죠.” ‘웃픈’ 이야기에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그래도 살아남았어요. 23년을 더 버텨 오늘까지 왔어요. 우리가 이렇게 음악을 연주하고 여러분이 그걸 감상하는 것 자체가 기적 같아요.” 그제야 박수 치며 웃을 수 있었다. 순간, 전태관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함께 있었더라면…. 공연이 절정에 이를 무렵, 김종진이 말했다. “전태관을 위한 곡을 준비했어요. 마지막으로 태관과 함께 작업한 곡입니다. 지난 공연 때마다 너무 울어서 제대로 못 불렀어요. 울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오늘도 지키기 힘들 것 같네요.” 그는 <고장난 시계>를 불렀다. 2013년 발표한 25주년 베스트 앨범 《그르르릉!》(GRRRNG!)에 수록한 신곡이다. 스스로 예언한 대로 김종진은 울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도 가슴으로 함께 울었다. 지키지 못한 ‘울지 않겠다’는 약속 앙코르곡 <브라보 마이 라이프>까지 부르고 난 뒤 김종진이 말했다. “공연을 하고 나니 막혔던 게 쑥 내려갔어요.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밖에 나가면 함박눈이라도 펑펑 내릴 것 같군요.” 공연장을 나오는데, 거짓말처럼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전태관이 내려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인공으로 뿌린 눈이었다. 그러면 어떤가. 난 그냥 전태관의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형님, 선물 고맙습니다. 잘 계시죠?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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