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가수 최은진(맨 오른쪽)의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공연이 열렸다. 수류산방 제공
<고향>에 끌리기는 최은진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연극배우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최은진은 타고난 예인이다. 우연한 계기로 민요 <아리랑>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2003년 나운규 탄생 100돌 기념 음반 《아리랑 소리꾼 최은진의 다시 찾은 아리랑》을 냈다. “음반을 내긴 했는데, 이걸 누가 듣겠나? 혼자서라도 불러야겠다” 싶어 서울 안국동에서 선술집 문화공간 ‘아리랑’을 열었다. 여기서 <아리랑>과 함께 부른 노래가 1930~40년대 일제강점기에 널리 불린 만요다. <오빠는 풍각쟁이> <빈대떡 신사>처럼 풍자와 해학이 담긴 노랫말을 특징으로 한다. 하나의 장르로 대접받거나 음악사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최근 들어 당시 민중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자산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최은진이 부르는 만요를 듣고 홀딱 반한 음반 제작자 하나가 그 노래들을 음반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내놓은 음반이 만요 13곡을 담은 《풍각쟁이 은진》이다. 서울 홍익대 앞에서 활동한 듀오 ‘하찌와 티제이(TJ)’로 잘 알려진 일본 음악가 하찌가 프로듀서를 맡아 예스러운 느낌을 잘 살려냈을 뿐 아니라, 최은진의 목소리는 타임머신 그 자체였다. <오빠는 풍각쟁이> <다방의 푸른 꿈>을 공동 타이틀곡으로 삼았는데, 나는 그보다 1번 트랙으로 내세운 <고향>에 더 끌렸다. 기타와 현악기로 단출하게 편곡했는데도 깊은 울림을 줬다. 최은진의 목소리는 가벼운 몸피로 통통 튀어오르는 듯하면서 어딘지 모를 짙은 애수를 드리웠다. 원곡과 비슷하면서도 차별화된 매력을 풍겼다. 나는 원곡보다 최은진의 <고향>을 더 좋아하게 됐다. 3. 최은진 <고향 파트2>(2018) <고향>에 끌린 사람들이 또 있었다. 선술집 아리랑 단골손님 중에는 출판사 수류산방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최은진이 후속 음반을 내길 원했다. 출판사이지만 처음으로 음반을 기획·제작하기로 했다. 1930~40년대 노래를 부르되 이번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자는 게 큰 방향이었다. 그래서 섭외한 이들이 홍대 앞 인디신에서 활동하는 김현빈과 전자음악가 293(이구삼)이다. 둘은 옛 노래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색다른 분위기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발표한 음반 《헌법재판소》다. 수록된 10곡에 대한 해설과 당시 시대상을 전하는 글까지 담아 아예 288쪽짜리 두툼한 책으로 냈다. 음반의 인트로(도입부) 격으로 실은 1번 트랙 연주곡부터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기기타와 컴퓨터로 세련되게 주조한 사운드는 트렌디한 클럽 음악 같았다. 알고 보니 《풍각쟁이 은진》 음반의 1번 트랙 <고향>의 도입부 사운드를 응용해 만든 곡이었다. 여기에 <고향 파트1-은진철도 고고고>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8번 트랙으로 마침내 <고향 파트2>가 등장한다. <고향>을 뼈대로 하되 노랫말을 일부 바꾸고 “랄랄라랄라~” 하는 대목을 크게 늘려 이른바 ‘후크송’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루브(리듬) 넘치는 베이스 라인은 고개를 가만둘 수 없게 만든다. 지난해 12월1일 홍대 앞 더스텀프에서 열린 음반 발매 기념 공연에 갔다가 신세계를 만났다. 노래와 연극을 결합한 음악극 형태의 무대는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마지막에 <고향 파트2>를 부르는 순간 백댄서들과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기차놀이를 했다. 세대, 국경, 문화를 초월해 우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탄 것만 같았다. 이후 내겐 꿈이 하나 생겼다. 록페스티벌의 너른 벌판에서 모두가 하나 되어 “랄랄라랄라 랄랄라라~” 떼창하며 기차놀이를 하는 날을, 나는 꿈꾼다. 그러면 거기가 바로 내 고향이 될 것이다.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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