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틀리 크루의 ≪닥터 필굿≫ 앨범 재킷. 유니버설뮤직 제공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다 2015년 갑자기 “이번 투어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해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내한공연 한 번 안 하고 은퇴라니! 당시 마지막 투어를 보러 일본에 가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2015년 12월31일 투어는 끝났고, 이후엔 정말로 잠잠했다. 그러더니 지난 9월 머틀리 크루 멤버들은 새 노래를 작업하고 있다고 깜짝 발표했다. 언젠가 한국에 올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의 그 시디를 지금은 갖고 있지 않다. 어쩌다 잃어버린 건지, 친구에게 돌려준 건지 기억이 희미하다. 문득 그 노래들이 미치도록 그리워서 몇 년 전 시디를 다시 샀다. 사실 음원 사이트에서 들으면 될 일이지만, 왠지 시디로 듣고 싶었다. 자동차에서 시디를 틀고 <킥스타트 마이 하트>를 들으며 질주하노라면,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오는 타임머신 자동차라도 탄 것만 같다. 음악적으로 더 훌륭한 명반이 넘쳐나지만, 나는 죽어도 이 음반만은 늘 차에 놔둘 것 같다. 이건 언제라도 날 뿅 가게 해줄 합법적인 ‘마약’이니까. 2. 머틀리 크루 ≪닥터 필굿≫ 니키 식스 씨께. 보내주신 데모 테이프 잘 들었습니다.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음악들로 가득하더군요. 앨범 제목부터 아주 좋습니다. 보통 병원에 가면 무섭잖아요. 의사들은 대개 불친절하고, 커다란 주사를 맞을 수도 있고, 행여나 불치병 통보라도 받으면 어쩌죠? 그런데 기분 좋게 만드는 의사라니! 그 병원 매일매일 가고 싶어지는군요. 이거 전국병원협회 홍보가로 밀어도 되겠어요. 그런데 데모 테이프에서 왜 이렇게 술 냄새가 나는 거죠? 냄새만으로 취할 지경이에요. 여기 묻은 하얀 가루는 뭡니까? 킁킁. 무슨 냄새가 이렇죠? 아, 기분이 이상해요. 더는 편지를 쓸 수가 없군요. 앨범 계약을 할지 말지, 그딴 얘기는 개나 줘버리고 일단 &%$#@?@%%#. 3. 에필로그 고백한다. 앞에 쓴 글은 내가 존경하는 음악애호가이자 언론인이 최근 낸 책을 오마주한 것이다. 1번 글은 한국방송(KBS) 라디오 피디 정일서의 책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형식을 빌린 것이다. 올드팝 명곡들을 개인적 추억과 음악적 정보와 엮어 맛깔나게 풀어낸 책이다. 2번 글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임희윤의 책 <망작들3: 당신이 음반을 낼 수 없는 이유> 형식을 빌린 것이다. 가상의 음반 제작자가 아티스트에게 퇴짜를 놓으며 보내는 편지들을 모은 책인데, 실제 명반을 절묘하게 비튼 블랙유머에 연신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 딴에는 흉내 낸다고 해봤는데, 두 훌륭한 책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잃은 건 자존심이요, 얻은 건 질투심이다. 이래서 나한테는 책 내자는 소리가 안 들리는구나. 에라이, <닥터 필굿>이나 듣자.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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