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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싱싱한 낙지수액의 감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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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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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는 주로 서해와 남해의 갯벌이 주산지로 꼽힌다. 같은 낙지라도 갯벌에 따라 맛과 특징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최근 중국산 낙지가 어시장의 대종을 이루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맛과 질감이 다르다. 더욱이 수입낙지는 대부분 냉동낙지로, 동태가 생태 맛을 낼 수 없는 것처럼 맛의 개념이 다르다.

이같은 특성들은 먹는 방법이나 조리법에서도 마찬가지다. 서해안의 대표적인 낙지 산지인 서산과 태안지방의 낙지는 어릴 때는 밀낙이라고 해 남해안의 세발낙지처럼 회로도 먹지만 대부분 길이가 1m 가깝게 거의 다 자란 것을 더 알아주고, 싱싱한 질감과 시원한 맛도 이때가 제맛이다. 조리방법은 전골식으로 끓여내는 박속낙지탕(국)이 최고의 별미고, 볶음도 푸짐하고 시원한 맛이 있다.

남해안 낙지는 역시 세발낙지를 최고로 꼽는다. 길이가 20∼30cm 정도로 발이 가늘고 연하면서 뒷맛이 달콤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먹는 방법도 주로 회와 꼬치구이가 일미고, 맑은 장국에 끓여내는 연포탕과 볶음으로 먹어도 감미로운 맛이 있다.

낙지맛은 계절과도 관계가 깊다. 남해안 세발낙지나 서해 밀낙은 음력으로 4∼5월, 늦은 봄에서 초여름이 제맛이고, 성숙한 낙지맛은 가을철을 더 쳐준다. 봄에 갯벌에서 잡은 세발낙지들은 한여름 충분한 먹이를 먹으며 몸 속에 맛과 영양분을 듬뿍 담고 겨울 채비를 해야 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음력으로는 7∼8월에 해당되고 이때 낙지 한 마리는 인삼 한 뿌리와 같다는 옛말이 전해올 정도다. 지금부터 양력 10월 초까지가 바로 그 시기다.

낙지볶음 맛도 물론 이때가 제맛이다. 생낙지 가격도 1년 중 이 시기가 가장 싼 때여서 웬만큼 이름난 낙지집들은 굳이 냉동낙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가을낙지는 추석을 전후해 맛이 절정을 이루고, 양념맛 또한 어느 것이나 갓 추수한 햇것들이어서 낙지볶음 맛도 극치에 달한다. 그래서 평소 낙지볶음을 좋아했거나 관심이 있었다면 한번쯤 단골집에 들러 제맛을 확인해볼 만하다.

유명 낙지볶음집들은 대부분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에 몰려 있고, 아니면 산지의 내력있는 토속음식점들이 맥을 이어온다. 전골이나 탕과 달리 빨갛게 양념에 범벅이된 말랑한 낙지발은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고 입 안에 넣으면 씹을 때마다 툭하고 터져나오는 바닷물 같은 싱싱한 낙지수액이 얼큰하면서 시원한 양념맛과 어우러지는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싱싱한 생낙지일수록 똑똑 끊길 정도로 씹히는 맛이 더 있고, 다 먹도록 이 사이에 끼는 법도 없다. 이 맛 때문에 새댁이 아이를 가지면 가장 먼저 찾는 음식 중 하나가 낙지볶음이고, 따끈한 쌀밥에 썩썩 비벼 놓고 조개국이라도 곁들이면 더욱 좋다.


이름난 낙지볶음집/

1 현대낙지집=강남 압구정동에서 최고의 낙지볶음집으로 손꼽힌다. 낙지볶음 1접시 2만원. 서울 강남구 신사동(02-544-8020).

2 실비집=옛 무교동 낙지골목에서 맥을 이어오는 집들 중 그때의 특성을 가장 잘 지켜오고 있다는 집이다. 낙지볶음 1접시 1만3천원. 서울 종로구 청진동(02-732-7889).

3 본가낙지볶음=옛 부산 조방낙지골목에서 대를 이어오는 집이다. 서울 무교동이나 전라도식 낙지볶음처럼 빨갛게 볶음하지 않고, 양배추와 대파를 썰어넣고 다진 양념을 알맞게 풀어 밥에 비비기에 꼭 알맞은 조방낙지골목의 옛맛을 잘 이어오고 있다. 낙지볶음 1인분 4500원. 부산시 범천1동(051-642-1041).

4 부산할매낙지=부산 범일동 조방할매낙지의 맛을 대구로 옮겨다 크게 성공한 집이다. 문을 연 지 10년이 지나 지금은 대구사람들의 입맛이 가미되어 부산보다는 다소 매운맛이 강하고 뒷맛이 한결 시원하다. 낙지볶음 1인분 5천원. 대구시 서구 내당동(053-554-9475).

5 할매낙지=울산 동구 명덕여중 입구에서 낙지볶음집으로 10년이 넘은 집이다. 삼천포에서 올려오는 세발낙지에 곱창과 새우를 넣어 볶은 ‘낙곱새볶음’이 특히 유명하다. 낙지볶음 1인분 5천원. 경남 울산시 동구 일산동(052-232-8740).

6 대원식당=군산어항에 들어오는 활어낙지를 중심으로 낙지볶음과 낙지전골, 불낙전골 등 다양한 낙지요리를 전문으로 한다. 낙지볶음 1인분 1만원. 전북 군산시 월평동(063-442-8814).

7 수락정=광주 서구 쌍천동 서부등기소 앞의 유명한 낙지집이다. 해남 황산면 태생의 주인이 고향마을에서 공급받는 세발낙지로 연포탕과 낙지볶음을 낸다. 차분한 분위기의 가정집 마당과 정갈한 상차림이 인상적이다. 낙지볶음 1접시 2만천원. 광주시 서구 쌍촌동(062-371-1818).

8 호산회관=목포시내에서 100% 자연산 횟감만을 사용한다는 이름난 해물집이다. 낙지요리만도 12가지에 이를 정도로 전문성이 뛰어나다. 모든 낙지요리는 산 세발낙지를 이용한다. 낙지볶음 1인분 1만5천원.전남 목포시 용당2동(061-278-0050).

이사람의 맛내기/ 현대낚지집 정상순 할머니

눈맛만으로도 땀이 나!

현대낙지집은 서울 압구정동 광림교회 앞에서 신사동쪽으로 난 일방통로에 들어선 음식촌에 자리잡고 있다. 1985년 문을 열어 15년 내력을 지닌 낙지볶음집이다. 그냥 낙지볶음과 세발낙지볶음 두 가지로 구별해서 만드는 맛이 하도 기막히다고 소문나 강남 아파트단지 내 웬만한 주부들이라면 거의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이곳 낙지볶음맛이 이토록 유명해진 데는 주인 정상순(66) 할머니의 고집스런 낙지선별과 양념관리에 있다. 본래 음식솜씨가 타고났다는 평판을 들어왔지만 정작 본인은 음식솜씨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음식이든 재료가 좋으면 제맛이 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곳 낙지는 싱싱하게 살아 있거나 기운이 빠지지 않은 것을 들여와 볶음감으로 사용한다. 낙지 자체가 싱싱하고 맛이 뛰어난데다 토종마늘과 태양초 고추로 빚은 양념을 알맞게 숙성시켜 양념이 제맛이 날 때 볶음을 해, 눈맛만으로도 땀이 날 정도로 빨갛지만 입에 넣으면 얼큰하면서 감치는 맛이 있고 시원한 뒷맛이 계속 입맛을 당기게 한다.

낙지도 부족하지 않게 넉넉히 넣어주고 가격을 조금 더 받더라도 음식은 갖출 것을 제대로 갖춰야 제맛이 난다는 것이 할머니의 음식관이어서 음식값은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음식맛을 보고 내용을 확인하고 나면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길 수 없다는 것이 단골 고객들의 이야기다.

이외에도 다른 낙지집과 확연히 다른 특징을 꼽는다면, 따라내는 찬들이 토속적이면서 고유한 맛으로 낙지볶음맛을 한껏 돋우어 준다는 것이다. 고랭지채소로 담근 배추김치는 물론 가을에 담가 충분히 익힌 무김치를 보관해놓고 볶아내는 등 독특한 맛이 고객들을 감동시킨다.

충북 청주가 고향인 할머니는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마쳤기 때문에 일본음식처럼 유난히 깔끔한 상차림이 몸에 배어 있다. 최근에는 일본TV와 책자에 소개되어 일본인 관광객들이 음식관광차 찾아오는 음식명소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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