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2018’ 무대에 오른 린킨 파크의 멤버 마이크 시노다.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제공
음악으로 용기를 얻는 관객들 베닝턴의 죽음 이후 어둠과 절망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던 그는 노래를 만들면서 서서히 빠져나왔다. “이건 슬픔과 어둠으로 가는 앨범이 아니라, 거기서 벗어나는 여행”이라고 했다. 실제 앨범의 허리에 해당하는 8번 곡 <크로싱 더 라인>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확 밝아진다. 스스로에게 행한 음악치료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체스터의 죽음 이후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이 감정을 음악에 담아도 될까, 고민했어요. 결국 계속 음악을 하면서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됐죠. 그걸 관객과도 소통하고 싶었어요. 베닝턴의 사망 이후 공연하면서 관객이 카타르시스와 힐링의 감정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공연을 마치고 관객과 만나면 ‘용기를 얻었다’고 말해주더군요. 그들과 함께 저도 용기를 얻어요.” 시노다는 인터뷰를 마치고 펜타포트 무대에 섰다. 기록적인 폭염에도 수많은 팬이 그를 반겨주었다. 시노다는 말했다. “베닝턴은 유쾌한 사람이었어요. 예전에 한국에 공연하러 와서 함께 관광하던 때가 떠올라요. 여러분이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고는 건반을 쳤다. 린킨 파크 데뷔 앨범에 수록된 <인 디 엔드>의 전주였다.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시노다는 먼저 자신이 맡은 대목을 불렀다. 다음은 베닝턴의 차례였다. 시노다는 입을 닫았다. 대신 노래한 이들은 관객이었다. 베닝턴의 빈자리는 관객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노래는 그렇게 시노다와 관객의 합작으로 완성됐다. 나 또한 동참했다. 노래가 끝난 뒤 가슴이 벅차올랐다.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다. 마이크 시노다의 무대는 록보다 힙합에 가까웠다. 그는 포트 마이너로 활동할 때 래퍼 제이지와 손을 잡았다. 린킨 파크가 제이지와 협업해 앨범을 낸 적도 있다. 록페스티벌 무대에서 랩을 하고 힙합을 하는 게 이제는 어색하지 않지만, 그런 분위기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제이지는 2008년 영국의 대표적인 록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에서 흑인 힙합 음악가로는 최초로 헤드라이너로 섰다. 당시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이를 비아냥거렸다. 록페스티벌의 메인 무대에 힙합이 웬말이냐는 것이다. 제이지는 오프닝으로 오아시스의 대표곡 <원더월>을 따라 부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는 록페스티벌 무대에 힙합 음악인이 서는 건 흔한 일이 됐다. 록이 죽었냐고 묻는다면… 마이크 시노다는 인터뷰에서 “록이 죽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자랄 때는 록, 힙합, 심지어 서브장르인 펑크록, 이스트코스트힙합 등으로 나눠가며 음악을 들었죠.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음악을 장르로 구분하기보다 무드로 구분해 들어요. 중요한 건 아티스트를 정형화된 틀 안에 넣기도 힘들다는 겁니다. 내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이들은 록 아티스트라고 하기도 힘들고, 힙합 아티스트라고 하기도 힘들어요. 그들은 다양한 음악을 하고, 사람들은 그런 다양한 음악을 즐겨요. 그거면 된 거 아닌가요.” 우문에 현답이었다. 시노다의 음악은 린킨 파크의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장르의 벽을 넘어 머리가 아닌 가슴에 와닿는다.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다.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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