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위부터 요조, 백수정, 김민정, 안예은, 유병덕, 연리목, 흐른, 오지은
출판인 이민희씨가 소히(사진), 요조 등 음악가 9명의 목소리를 담은 <두 개의 목소리>를 펴냈다. 산디 제공
‘여신’ 또는 ‘마녀’ 프레임 ‘홍대 여신’ 표현에 대한 공개적인 문제제기는 오지은이 먼저 했다. 그는 올해 초 <여성신문>에 기고한 ‘홍대 여신은 혐오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마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너무나 전형적이다. 여신 또는 마녀의 프레임은 한국 사회가 여성 창작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창작자 고유의 인간으로서의 개성을 똑바로 봐주지 않는 것이다.” 요조도 이 글을 읽었다. 동료가 나서 여성 음악가를 둘러싼 차별과 혐오를 말해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당사자인 내가 그렇게 말하면 또 욕을 먹겠지?” 하고 스스로를 검열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음에 힘을 얻었고, 나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요조는 사흘 뒤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냈다. 기사 제목은 ‘홍대 여신이 왜 불쾌한 명칭인지 알았죠’였다. 요조는 인터뷰를 마친 뒤 누군가 그 말을 오해할까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돌아온 반응은 공감과 이해, 그리고 오해에 대한 사과였다. 나 또한 요조에게 이 글을 빌려 사과한다. 언젠가 그를 만나면 직접 사과할 것이다. 소히와는 10여 년 전 인터뷰를 했다. 브라질 대중음악(MPB) 요소를 섞은 솔로 음반 <앵두>를 비롯해 음악 얘기를 주로 나눴다. 이민희와의 인터뷰에서 소히는 다른 얘기도 들려준다. 자신이 친족 성폭력 생존자임을 고백한 얘기다. 첫 고백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료 가수 송은지와 ‘흐른’, 여성학을 연구하는 친구들과 함께 세미나를 열고 토론하는 작은 모임 ‘릴리스의 시선’을 결성했다. 취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을 실어줄 문화 활동을 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이는 훗날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컴필레이션 음반 <이야기해주세요>로 이어진다. 첫 세미나를 마치고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 모임 구성원들이 여성으로 겪어왔던 불편한 경험을 나누던 그때, 소히는 고백했다. 그날 이후 뭐가 달라졌는지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말할수록 강해짐과 동시에 편안해짐을 느꼈다. 소히는 2집 <나나나>, 3집 <심증>, 4집 <보통의 경험> 같은 노래에서 성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말하고 노래하고 쓸 거라 했다. 주변 남자들 딴에는 소히를 위해준다는 생각에 “말하고 다니지 않는 게 좋겠어” 한다. 하지만 소히는 자신의 고백을 시작으로 새로운 고백이 이어지는 걸 봐왔다. 그럴수록 말해야 한다는 걸 소히는 다시금 깨닫는다. 음악가들이 꼽은 페미니즘 교과서 책에는 앞서 언급한 요조, 오지은, 소히를 비롯해 김민정(에고펑션에러), 백수정(다이얼라잇), 안예은, 연리목, 흐른, 그리고 9명 중 유일한 남성 음악가인 유병덕(9와 숫자들)의 얘기가 실렸다. 각자 꼽은 페미니즘 교과서 목록도 있어, 페미니즘이 궁금한 이들을 위한 길라잡이 구실도 한다. 나 또한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당장 김민정이 추천한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와 요조가 추천한 <2016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아이즈 편집부 지음, 아이즈북스 펴냄)부터 시작해야겠다.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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