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일렉트로닉댄스뮤직 축제 ‘울트라 코리아 2018’ 현장. 울트라 코리아 제공
보드카 라운지에서 내려오니 빗방울이 흩뿌리기 시작했다. 록 페스티벌에서 비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를 맞다보면 모든 걸 내려놓고 축제에 완전히 빠져드는 순간이 온다. EDM 페스티벌도 다르지 않았다. 비를 맞으니 분위기에 더 취했다. 맥주와 보드카가 혈관을 타고 돌았다. 갑자기 눈앞에 헛것이 보였다. 이건 영화 속 장면이잖아! <트랜스포머>의 두 주인공 범블비와 옵티머스 프라임이 눈앞에 있었다. 헛것이 아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파티 의상으로 입고 온 것이었다. 우리는 웃으며 다가가서 사진 찍기를 청했다. 그들은 기분 좋게 응해줬다. 그러려고 이 옷을 입고 왔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 둘이 자동차로 변신해 질주하는 상상을 했다. 화장실로 흘러온 익숙한 선율 큐와 에이는 자꾸만 디제이가 있는 무대를 향해 돌진했다. 사람들의 숲을 헤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덩달아 따라갔다. 이번엔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떠올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오마하 해변을 향해 돌진하는 병사가 된 기분이었다. 빗발치는 총탄 대신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은 위험하기는커녕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어느 순간 큐와 에이는 전진을 멈추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몸을 흐느적거렸다. 에이는 보드카 라운지에서 얻어온 머리띠를 내 머리에 묶어주었다. 머리띠에선 형형색색 불빛이 반짝였다. 이번엔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속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일(강혜정)이 된 기분이다. 여일처럼 헤헤거리며 팔다리를 흔들어댔다. 이런!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방광이 차올랐다. 그건 큐와 에이도 마찬가지였다. 빽빽한 인파를 헤치며 빠져나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작전이 재개됐다. 시원하게 비워내고 나니 라이언 일병이라도 구한 것처럼 기뻤다. 이제 다시 돌아가볼까? 어라! 근데 이건? 익숙한 선율이 화장실로 흘러들었다. 체인스모커스의 <클로저>.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2주 연속 정상을 지킨 곡, 한국에서도 길거리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던 바로 그 곡이다.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무대는 멀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보통은 렌즈가 무대를 향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꽃을 쓴 내 얼굴을 셀카로 찍었다. 얼굴 뒤로 멀리 무대가 보이고 <클로저>의 바로 그 선율이 흘렀다. 내 얼굴과 카메라는 리듬을 타고 흔들댔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체인스모커스 무대를 마지막으로 이날 축제는 막을 내렸다. 그냥 갈 수 없었다. ‘애프터 파티’의 시작이다. 남들은 근처 핫한 클럽으로 가서 남은 밤을 불태운다지만, 우린 방이동 ‘재즈 잇 업’으로 향했다. 재즈를 비롯해 다양한 신청곡을 틀어주는 단골 음악바다. 코코넛 향이 나는 테킬라를 들이켜는데,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여기 지금 내게 시작되고 있어~.” 듀스의 <여름 안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벌떡 일어서서 몸을 흔들었다. 90년대 록카페로 순간이동한 것 같았다. 역시 나는 이게 체질인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90년대 록카페로 순간이동 그래도 내년에 또 울트라 코리아에 갈 것 같다. 내년에는 또 어떤 별세상이 펼쳐질까? 벌써부터 두근댄다. 아니, 당장 다른 EDM 페스티벌이라도 찾아볼까?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 2018(7월7~8일), 월드클럽돔 코리아 2018(9월14~16일), 월드디제이 페스티벌(내년 상반기)…. 세상은 넓고 즐길 축제는 많구나.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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