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3일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 공연을 했던 고 이동기 선생. 페이지터너 제공
“내(피노키오)가 언제 사람이 되나…? 음악을 잘해야 사람이 되는구나. 왜냐면 내가 나팔장이이기 때문에…. 한데 그게 죽을 때까지 안 될 거 같아.” 선생은 특유의 소년 같은 웃음을 보였다. “사실 놀지 않고 열심히 했는데…, 이게 돈은 모이지 않는 직업이에요.” 고등학교를 마친 직후부터 장장 60년을 음악에 바치고도 ‘사람’이 되지 못하고 돈도 못 모은 그이지만, 그저 겸연쩍은 웃음 한번 짓고는 클라리넷을 불고 또 불었다. 이제 남은 재즈 1세대는 8명뿐 <브라보! 재즈 라이프>는 재즈평론가 남무성이 제작하고 연출한 다큐멘터리영화다. 그는 대학 시절 종종 재즈 1세대의 클럽 공연을 보러 다녔다. 객석이 텅텅 비어도 늘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명받은 남무성은 훗날 그들을 조명한 영화를 만들었다. 더 세월이 흘러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기 전에 한국 재즈 1세대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해둬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영화는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고, 재즈 1세대 연주자들이 참여한 ‘브라보! 재즈 라이프’ 공연도 몇 차례 열렸다. 영화 개봉 이후 조상국(드럼), 강대관(트럼펫), 정성조(색소폰), 이동기 선생이 돌아가셨다. 이제 남은 재즈 1세대는 이판근(재즈 이론가), 김수열(색소폰), 류복성(퍼커션), 김준(보컬), 박성연(보컬), 최선배(트럼펫), 강태환(색소폰), 신관웅(피아노) 정도다. 이동기 선생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엔 재즈 1세대 연주자들은 물론 많은 후배 재즈 연주자가 다녀갔다. 한국 재즈 2세대 피아니스트 임인건은 제주도 집에서 올라와 사흘 내내 빈소를 지켰다. 발인식과 안장식 때 최선배는 트럼펫을 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임인건은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트럼펫 선율이 울려퍼지는 따뜻한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가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임인건은 제주 하도리에 산다. 그는 2015년 발표한 음반 《올 댓 제주》에 노래 <하도리 가는 길>을 만들어 실었다. 제주 출신 포크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이 불렀다. 임인건은 2016년 박성연과 야누스에 바치는 음반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를 작업하면서 이동기에게 <하도리 가는 길>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이동기 선생님은 연주만 했지 노래를 하신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25년 전 약주를 하시고 기분이 좋으셨는지 노래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목소리도 좋고 노래를 너무 잘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가 2년 전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유일한 보컬 곡 <하도리 가는 길> 그렇게 탄생한 이동기 버전의 <하도리 가는 길>은 선생이 녹음으로 남긴 유일한 보컬 곡이다. 선생은 노래한다. “하도리 가는 길 따뜻한 밝은 햇살/ 하얗게 곱게 핀 억새 웃고 있네/ 지금쯤 철새들은 호숫가 위를 날까/ 생각에 잠겨 가던 길을 멈춰보네/ 언젠가 이 길 역시 우리의 추억이지/ 지금 나는 이 길을 가 어릴 적 나와 함께/ 하도리 가는 길 푸른 바다 저편/ 멀리서 내 님이 나를 오라 부르네” 노래를 듣고 있으니 하늘에서 동료들과 만나 행복하게 연주하고 있을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본래 6월4일 저녁 7시30분 서울 서교동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 ‘이동기 데뷔 60주년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다. 후배 음악인들이 선생을 모시고 협연하는 무대를 계획했지만 후배들이 선생에게 바치는 헌정공연으로 바꿔 진행한다고 한다. 기획사는 예매표를 환불해주기로 하고 무료 공연으로 바꿨다. 그날 공연에 가면 왠지 선생을 만날 것만 같다. 소년처럼 수줍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반겨줄 것만 같다.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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