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봄을 알리는 유채꽃.
정나리가 제주도에 온 건 밴드 허클베리핀 때문이다. 허클베리핀 멤버 이기용과 이소영이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면서, 밴드 매니저 노릇을 하던 그 또한 제주도에 오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부터 룸메이트로 지내던 이소영과 함께 서귀포시 성산읍에 터전을 잡았다. 그가 갑자기 닭곰탕집 주인장이 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 총학생회장 출신 운동가가 졸업 뒤 갑자기 음악가의 길을 가는 것만큼이나 의외였다. 월정곰닭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다 됐다. 정나리가 깜짝 놀라며 우리를 맞았다. 내 딴에는 ‘서프라이즈(!)’ 방문이었으나, “보통 오후 4시에 문 닫고 들어가는데, 집에 가고 없었으면 어쩌려고 미리 연락 안 했느냐”는 반가움 섞인 타박이 돌아왔다. “재료가 떨어져 닭곰탕을 대접할 수도 없다”면서도 그는 남은 고기와 육수를 박박 긁어 내왔다. 여느 때와 달리 폐점 시간 이후에도 남았던 건, 뭍에서 후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영화 연출 일을 하는 후배와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둘이었던 술자리는 자연스럽게 넷으로 불었다. 아름답고 아픈 유채꽃 정나리는 제주도에 올 때부터 작은 식당을 할 요량이었다고 했다. 음주와 요리를 좋아하는 그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했다. 1년 동안 가게 자리를 물색했고, 결국 월정리의 제주식 전통 가옥을 낙점했다. 근처 양계장에서 갓 잡은 생닭만 쓰고, 인공조미료 없이 깊은 국물을 우려냈다. 현대적인 간판과 인테리어에 끌려 들어온 관광객이든 호기심에 들른 마을 주민이든 그릇 바닥까지 비워내는 일이 잦아졌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독설가 박은석이 말했다. “솔직히 맛없으면 어쩌나 걱정했어. 근데 이 정도면 주변에 ‘한번 가봐, 괜찮더라’고 할 만하네.” 정나리는 새벽부터 일어나 식당 일을 하는 틈틈이 개인 음악 작업도 하고 이런저런 글도 쓴다고 했다. 고되어도 좋아하는 일이니 얼굴이 밝다. 여행 사흘째 되던 날, 성산일출봉에 갔다. 가는 길에 노란 유채꽃이 지천이었다. “푸른 바다 제주의 언덕/ 올레길마다 펼쳐져 있는 그리움을 따라”로 시작하는 노래가 떠올랐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유채꽃>이다. 누군가에게 유채꽃은 아름다움·그리움이지만, 누군가에게 유채꽃은 아픔이다. 안치환은 <잠들지 않는 남도>에서 노래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라고. 그날은 제주4·3 70주년 다음날인 4월4일이었다. 몇 년 전 우연히 들른 제주4·3 평화공원에서 4·3을 좀더 자세히 알게 됐다. 단순히 1948년 4월3일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1947년부터 1954년까지 7년에 걸쳐 최소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대참극임을 새삼 깨닫고 몸서리쳤다. 제주도에 정착한 가수 루시드폴은 4·3 평화공원에 갔다가 느낀 바를 담아 노래를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이번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직접 부른 <4월의 춤>이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은/ 4월이 오면 유채꽃으로 피어 춤을 춘다지/ 슬퍼하지 말라고 원망하지 말라고/ 우릴 미워했던 사람들도 누군가의 꽃이었을 테니/ 미워하지 말라고 모질어지지 말라고/ 용서받지 못할 영혼이란 없는 거라고/ 노래한다지/ 춤을 춘다지” 유채꽃은 이렇듯 용서, 화해, 치유의 노래와 춤이 되기도 한다. 비우러 갔다 채우고 온 여행 유채꽃을 보며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나직이 불러보았다.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사랑스런 노란 꽃들은/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을 끌어안고서/ 다시 그들의 노래를 들려주려고 해/ 너도 같이 들었으면 해/ 나는 여기에 있을게” 비우러 갔다가 많은 걸 채워 온 여행이 되었다. 글·사진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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