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록절엔 다양한 음악인들이 무대에 올라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서정민
다음으로 나온 밴드는 크라잉넛. 공연을 하다 말고 갑자기 멤버들이 케이크를 꺼내와 초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파티의 손님이기도 한 관객들이 큰 소리로 함께 노래 불렀다. 이날을 위해 턱시도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경록은 입이 귀에 걸린 채 촛불을 껐다. 이어진 노래는 영원한 청춘의 송가 <말달리자>. 관객은 두 손을 치켜들고 펄쩍펄쩍 뛰며 노랫말처럼 말달렸다. 핫한 인디밴드 총출동 이어 요즘 홍대 앞에서 가장 뜨겁다는 신인 밴드 호랑이아들들, 한경록의 솔로 프로젝트인 캡틴락 밴드가 잇따라 올라왔다. 캡틴락 밴드의 기타리스트는 ‘차차’라는 별명의 차승우. 1990년대 중·후반 크라잉넛과 함께 홍대 앞 펑크신을 이끌었던 밴드 노브레인의 초대 기타리스트다. 지금까지도 노브레인을 잘 이끌고 있는 보컬리스트 이성우는 객석에서 웃으며 오랜 친구들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레이지본, 오리엔탈쇼커스의 공연 이후 인기 디제이 타이거디스코가 올라왔다. 커다란 트렁크에 싸온 자신의 디제이 장비를 펼쳐놓은 뒤 특유의 복고 노래들을 틀며 디제잉을 시작했다.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송대관의 <해 뜰 날> 같은 노래가 그의 손을 거쳐 훌륭한 파티 음악으로 변모했다. 엘피(LP) 판과 디제이 장비를 열심히 만지던 타이거디스코는 중간중간 고량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밴드 더더가 공연한 뒤, 즉흥으로 이뤄진 밴드가 올라 연주를 시작했다. 남궁연이 드럼 스틱을 잡았고, 와이낫의 황현우가 베이스 기타를 잡았다. 이들은 함께 밴드를 한 적이 없는데도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것처럼 즉흥연주를 했다. 이전 경록절 때도 각기 다른 밴드에 속한 멤버들이 올라와 함께 즉흥연주를 하곤 했다. 음악계 대선배가 함께한 적도 있다. 언젠가는 ‘작은 거인’ 김수철이 올라와 기타를 잡았고 김창완, 강산에 등도 멋진 무대를 보여줬다. 한번은 최백호가 무대에 올라 모든 관객이 <낭만에 대하여>를 떼창한 적도 있었다. 경록절이 아니면 보기 힘든 광경이다. 신인 밴드 모브닝의 영국 밴드 퀸 커버(편곡) 연주에 이어, 최근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한경록의 절친 ‘유발이’ 강유현의 솔로 무대가 이어졌다. 피아노를 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대표곡 <라비앙 로즈>를 불렀다. 거친 밴드 음악들 사이에서 고고하게 핀 장미꽃처럼 톡 쏘는 매력을 풍겼다. 이날의 마지막 순서는 경록절의 단골 게스트인 타틀즈. 비틀스를 좋아하는 홍대 앞 음악인들이 모여 결성한 비틀스 ‘트리뷰트 밴드’(유명 팝 밴드의 모습과 음악을 본뜬 연주를 하는 밴드)다. 당연히 비틀스 노래만 불렀고, 당연히 모두가 열광하며 따라 불렀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헤이 주드>. 모두들 파티의 끝을 아쉬워하는 듯 “나나나 나나나나~” 후렴구를 끝낼 줄을 몰랐다. 타틀즈에서 ‘전레논’으로 불리는 와이낫의 전상규는 무대에서 내려온 뒤 “너무 취해서 <트위스트 앤드 샤우트>를 노래할 때는 나도 모르게 <라밤바>를 불렀다”고 고백했다. 뭐면 어떤가. 취해서 틀리든 말든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노는 날, 그게 바로 경록절이다. 이날 홍대 앞에 간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요즘은 웬만해선 홍대 앞에 잘 가지 않는다. 홍대 앞이 예전 홍대 앞 같지 않아서다. 언젠가부터 홍대 앞을 상징하던 라이브클럽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춤추는 클럽, 술집, 카페가 늘어갔다. 오래된 작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며 옷가게가 들어섰다. 한경록이 없어도 ‘경록절’은 영원하라 여전히 홍대 앞을 홍대 앞답게 만드는 경록절이 있음에 감사한다. 몇십 년 뒤에도, 한경록이 없어도 경록절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경록절은 단순히 개인의 생일잔치가 아니라 인디음악을, 홍대 앞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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