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명력을 지닌 음악을 창조하는 영화음악가는 이 시대의 모차르트이자 베토벤이다. 한겨레
나는 레드제플린을 비틀스와 함께 세계 대중음악사를 바꾼 두 영국 밴드로 꼽는다. 비틀스가 팝의 역사를 바꿨다면, 레드제플린은 록의 역사를 바꿨다고 할 수 있다. 레드제플린의 처절하면서도 끈적거리는 사운드는 록의 뿌리인 블루스의 위대함을 새삼 일깨웠고, 거칠고 힘 넘치는 사운드는 1980~90년대 세계 음악시장을 주름잡은 헤비메탈을 잉태했다.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품은 록음악, 그게 바로 레드제플린이었다. <베이브 아임 고나 리브 유>(Babe I’m Gonna Leave You), <홀 로타 러브>(Whole Lotta Love), <신스 아이브 빈 러빙 유>(Since I’ve Been Loving You),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 등 매력적인 히트곡이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도 <이미그런트 송>을 특히 좋아했다. 세 번째 정규음반의 문을 여는 첫 곡으로, 2분26초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에도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미 페이지의 기타, 존 폴 존스의 베이스가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둥둥 두둥둥~” 하는 리듬과 로버트 플랜트가 고대인들의 포효처럼 노래하는 “아아아~ 아!” 하는 대목은 늘 나를 흥분시킨다. 이 노래를 그토록 좋아했지만, 노랫말은 미처 알지 못했다. 제목을 보고 막연히 이민자 혹은 이주민의 노래이겠거니 여겼다. 노랫말을 눈여겨본 건 영화를 보고 나서다. 내용은 이렇다. “우리는 얼음과 눈의 땅, 온천수가 흐르는 백야에서 왔다. 신들의 망치는 우리 배를 새 땅으로 이끌어 다른 무리와 싸우고 노래하고 외칠 것이다. ‘발할라! 내가 왔노라.’ 힘차게 노를 저어 나아가자.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바다 건너 서쪽 땅.” 이건 단순히 이민자라기보다 침략자, 정복자의 노래다. 북유럽 바이킹족이 바다 건너 새로운 땅을 침략하고 정복하기 위해 출정하면서 전의를 다지는 노래인 것이다. 가사의 의미를 알고 나서야 영화와 더욱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무릎을 쳤다. ‘소스 음악’과 ‘오리지널 스코어’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인물이다. <토르: 라그나로크>를 보면 토르의 고향별인 아스가르드는 평화를 이룬 지금과 달리 과거에 주변의 많은 별들을 침략하고 정복했음이 드러난다. 북유럽의 정복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 선봉에 섰던 여전사 헬라는 다시 옛 영광을 재현하려 하지만 동생 토르가 막아선다. 이 과정에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대멸망(라그나로크)이 일어나고, 아스가르드 백성들은 토르와 함께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나서는 난민이 된다. 아마 이들은 후속 이야기에서 지구의 북유럽 땅 어딘가에 정착한 이주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영화 속 정복자, 이민자, 이주민, 난민이라는 각기 다른 의미가 ‘이미그런트’라는 단어 하나에 모두 함축돼 있으니, 이보다 더 영화를 온전히 상징하는 노래가 또 있을까. 이 곡을 선정한 감독 혹은 음악감독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이처럼 기존에 발표된 곡을 영화에 삽입하면서 새 생명을 얻는 사례가 제법 있다. <토르: 라그나로크>처럼 레드제플린의 원곡을 그대로 쓰거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예전 노래들을 새롭게 만들어 쓴다. 이런 노래를 ‘소스 음악’이라고 한다. 영화와 맞는 기존 곡을 얼마나 잘 찾아내 조화시키느냐는 것이 음악감독의 능력이다. 이와 달리 영화를 위해 온전히 새로 만든 연주곡도 있다. ‘오리지널 스코어’라 하는데 엔니오 모리코네, 한스 치머, 존 윌리엄스 등 우리가 아는 유명 영화음악가들은 대부분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기존의 좋은 곡을 영화에 잘 녹여내는 것도 좋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오리지널 스코어야말로 영화음악에서 더 조명받아야 마땅하다. 최근 개봉한 <스코어: 영화음악의 모든 것>을 봤다. 무성영화 시절,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음을 숨기기 위해 피아노를 연주한 데서 비롯됐다는 영화음악의 유래부터 위대한 영화음악가들과 그들의 작품, 그 의미를 거시적으로 훑어보는 다큐멘터리다. 너무도 유명해 듣자마자 알 수 있는 명곡들이 내내 이어져 시종일관 흠뻑 빠져 영화를 봤다. 아니, 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이 둘 있다. 하나는 영화음악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시각에 크게 의존한다. 어떤 음악이 흐르는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 더 오래, 깊게 남는 건 음악인 경우가 많다. <죠스> 하면 구체적인 장면보다 “빠밤 빠밤~” 하는 음악을 먼저 떠올리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이 음악 없이 <죠스>의 영상만 봤다면? 긴장과 스릴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것이다. 이 시대의 모짜르트, 영화음악가 또 하나는 영화음악가의 중요성이다. 오케스트라는 고전음악의 핵심이었다. 위대한 작곡가들은 오케스트라로 연주해야 하는 명곡들을 만들었다. 이제는 전기를 이용한 악기나 컴퓨터가 웬만한 소리를 다 만들어낸다. 현대음악은 이런 도구들을 활용한다. 오케스트라는 과거 음악을 재현하는 존재에 머문다. 이런 상황에서 오케스트라를 이용해 새로운 생명력을 지닌 음악을 창작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영화음악가다. 그들은 이 시대의 모차르트요, 베토벤이다. 한국에도 좋은 영화음악가가 많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 음악감독의 이름과 삽입곡들의 제목을 보시라 당부하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큰 힘이 될 것 같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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