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드록 밴드 미스터빅의 다섯 번째 내한 공연이 10월8일 서울 광장동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에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드러머 팻 토피가 함께해 뜨거운 떼창, 환호, 박수를 받았다. 파파스 이엔앰 제공
나는 밴드를 평가할 때 멤버들이 얼마나 끈끈한 관계를 맺는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실력을 떠나 멤버들 간의 합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원년 멤버들이 함께하는 밴드를 보면 무척 반갑고 짠하다. 밴드를 하다보면 별의별 일을 겪기 마련일 텐데, 함께 지지고 볶으며 그 모든 걸 견뎌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이번 미스터빅의 공연을 보며 떠올린 또 다른 밴드가 있다. 영국 록밴드 데프레퍼드다. 1980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들은 1983년 3집 앨범이 크게 히트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84년 일이 터졌다. 드러머 릭 앨런이 운전하던 차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만, 그는 왼팔을 잃었다. 드러머에게 한 팔을 잃은 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을 터. 세상 다 잃은 것처럼 절망하던 그에게 밴드 멤버들은 말했다. “팔 하나쯤 없다고 세상 끝난 것처럼 굴지 마. 너에겐 아직 오른팔이 있잖아.” 퇴원한 릭 앨런은 멤버들 앞에 섰다. “너희가 기회를 준다면 남은 한 팔로 도전해보고 싶어.” 왼팔 잃은 멤버 위해 ‘특수 드럼’ 주문 멤버들은 한 팔로 칠 수 있는 특수 드럼 세트를 주문 제작했다. 발로 밟는 페달을 많이 만들어 왼손의 공백을 채우려 했다. 릭 앨런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두 팔로 드럼 치던 시절에 만들어둔 곡들은 소용이 없었다. 모든 걸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1987년 데프레퍼드는 4년 만의 새 앨범인 4집 <히스테리아>(Hysteria)를 발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앨범은 1500만 장 넘게 팔려나갔고, 영국과 미국의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한 건 물론, 무려 7곡이나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올렸다. 이 앨범은 데프레퍼드의 대표작이 됐다. 릭 앨런은 지금도 데프레퍼드의 드러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멋진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드러머 때문에 해체해버린 전설의 밴드도 있다. 영국 록밴드 레드제플린이다. 1968년 데뷔 이후 9장의 앨범을 내리 성공시키며 세계 록 역사를 새로 써가던 레드제플린은 1980년 갑자기 해체해버렸다. 드러머 존 보넘이 술을 마시고 돌연 숨졌기 때문이다. 로버트 플랜트(보컬), 지미 페이지(기타), 존 폴 존스(베이스)는 “존 보넘이 없는 밴드는 더 이상 레드제플린이 아니다”라며 밴드를 해체했다. 그러고는 각자 활동했다. 이후 여러 음반사와 공연기획사, 팬들이 30년 넘게 재결합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딱 한 번 뭉친 적이 있다. 2007년 12월10일 영국 런던 오투(O2)아레나에서 레드제플린 1집을 낸 애틀랜틱레코드의 설립자 아흐메트 에르테군 추모공연이 열렸는데, 이 무대에 선 것이다. 존 보넘의 자리를 채운 이는 아들인 제이슨 보넘이었다. 이날 공연 이후 넷이서 계속 함께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로버트 플랜트는 언론 인터뷰에서 재결합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한때 전성기를 보낸 건 분명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이 끝났다”고 잘라 말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전설은 전설로 남겨두는 게 더 현명한 일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반쪽 귀환 기다리는 ‘봄여름가을겨울’ 문득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 전태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몇 년째 암 투병 중이다. 김종진은 홀로 밴드를 지키며 반쪽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전태관의 쾌유를 바라고 이 세상 모든 드러머를 응원하며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를 들어야겠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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