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즈 멤버들은 각자 스토리가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밴드의 얼굴 2D, 오사카 출신 기타리스트 누들, 베이시스트 머독, 미국에서 온 드러머 러셀. 고릴라즈 공식 누리집 갈무리
눈으로 직접 확인한 고릴라즈 공연 이들의 첫 음반은 800만 장 넘게 팔리는 대성공을 거뒀다. 만화 캐릭터로 이뤄진 가상 밴드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무척 신선했다. 데이먼 알반이 누구인가. 1990년대 영국 브릿팝의 중흥기를 이끈 양대산맥 오아시스와 블러의 한 기둥이 아닌가. 알반은 블러가 추구해온 록을 기반으로 힙합·일렉트로닉·팝 등 여러 요소를 뒤섞어 도무지 장르를 분류하기 힘든 독특하고 개성적인 음악을 내놓았다. 2005년 발표한 2집 <디먼 데이즈>(Demon Days)는 더 크게 성공했다. 3집 <플라스틱 비치>(Plastic Beach)에는 루 리드, 스눕 독, 드 라 솔 등 거물 음악인이 대거 참여했다. 고릴라즈는 올해 6년 만의 새 음반인 5집 <휴먼즈>(Humanz)를 발표하며 활동에 재시동을 걸었다. 고릴라즈는 매체에 실리는 가상 인터뷰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만들어간다. 음반을 차곡차곡 내면서 밴드 자체의 스토리도 쌓아간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머독은 돈 때문에 해적들에게 고장난 무기를 판다. 속은 것을 안 해적들은 고릴라즈 멤버 중 하나를 공격하기로 한다. 2집 수록곡 <엘 마냐나>(El Manana) 뮤직비디오를 보면 누들이 해적의 공격을 받고 생사불명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후 뿔뿔이 흩어진 멤버들이 우여곡절 끝에 플라스틱 비치로 피신해 새로 만든 음반이 3집 <플라스틱 비치>라는 식이다. 고릴라즈는 실제 공연도 한다. 처음에는 영상이나 홀로그램으로 캐릭터만을 비추고 실제 사람이 커튼 뒤에서 연주하다가 언젠가부터 연주자들이 직접 앞에 나서 공연을 한다. 관객과의 교감을 중요시해서다. 물론 무대 뒤 대형 화면으로 고릴라즈 캐릭터들을 보여주는 건 기본이다. 2006년 그래미시상식 때는 고릴라즈의 팬이라고 밝힌 마돈나와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고릴라즈의 3D 캐릭터들이 공연을 하다 마돈나가 등장해 함께 어울리는 무대는 가상현실과 실존 인물의 조화를 모범적으로 이뤄낸 사례로 꼽힌다. 말로만 듣던 고릴라즈 무대를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7월30일 경기도 이천 지산리조트에서 열린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 무대에 선 것이다. 무대에는 2D 역할을 하는 데이먼 알반을 비롯해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퍼커션에다 백코러스 6명까지 무려 14명이 올라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무대 뒤 대형 화면에선 고릴라즈 캐릭터들이 나오는 뮤직비디오 등을 계속 비추었다. 관객은 점프하거나 몸을 흐느적거렸으며, 때론 힙합클럽처럼 손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고릴라즈 공연은 이번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무대로 회자됐다. 가요 기획사들이 명심할 점은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했다. 왜 고릴라즈는 오랫동안 큰 성공을 누리고, 아담은 그러지 못했을까? 아담은 컴퓨터 기술을 앞세운 정보기술(IT) 기업 아담소프트가 탄생시켰다. 애초 음악보다 컴퓨터 기술을 과시하려는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음악은 그 수단이었다. 고릴라즈는 달랐다. 먼저 음악이 있었고 이를 더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었다. 둘의 결정적 차이는 단순하다. 결국 음악인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가요 기획사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이름도 얼굴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비슷한 아이돌 그룹이 매달 쏟아져나온다. 외모, 춤, 패션 등 온갖 요소를 고민하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이 명심해야 할 점도 바로 이거다. 결국은 음악이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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