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보이드(왼쪽)와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이 함께 찍은 사진. ⓒPattie Boyd_Pattie _ George_s Rose Garden
비틀스의 대부분 곡들은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만들었다. 간간이 조지 해리슨이 만든 곡이 있는데, 그중 최고작으로 꼽히는 노래가 바로 <섬싱>(Something)이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비틀스 최고의 러브송이라 극찬한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Something in the way she moves/ Attracts me like no other lover”(그녀의 몸짓에는 뭔가가 있어요/ 그 어떤 사랑과도 다르게 날 매혹하죠) 패티 보이드가 없었다면 이 아름다운 연가는 지금 세상에 없을지 모른다. 패티 보이드에게 매혹된 남자는 또 있었다. 지금도 세계 최고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에릭 클랩턴이다.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턴은 친구 사이였다. 해리슨은 자신이 만든 노래 <와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녹음할 때 클랩턴을 불러 함께 기타를 연주했다. 보이드에게 반한 클랩턴은 그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 발표했다. <레일라>(Layla)다. 페르시아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리는 <레일라와 마즈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으로, 보이드를 향한 클랩턴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처음엔 클랩턴을 받아주지 않던 보이드는 여러 이유로 남편 해리슨과 관계가 소원해지자 결국 클랩턴에게 갔다. 둘은 1979년 공식적으로 결혼했다. 둘의 사랑에 대한 유명한 노래가 또 있다. 파티에 가려고 머리를 빗고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느라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패티 보이드. 응접실로 내려가니 에릭 클랩턴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아냐, 괜찮아. 기다리는 동안 당신을 위한 노래를 하나 만들었거든.”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사랑 노래로 널리 불리는 <원더풀 투나이트>(Wonderful Tonight)다. 외출 준비를 금세 마쳤다면 이 노래 또한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클랩턴과의 불같은 사랑도 영원하진 못했다. 결혼 10년 만인 1989년 둘은 이혼했다. 해리슨과의 10여 년 결혼생활까지 치면, 20여 년 만에 온전히 혼자가 된 패티 보이드는 힘들어했다. 해리슨과 클랩턴은 각기 재혼했지만, 그는 홀로였다. 그를 다시 일으켜세운 건 카메라였다. 사진의 피사체가 되는 모델이 직업이었지만, 그는 늘 카메라를 손에 달고 다녔다. 해리슨과 클랩턴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 건 습관과도 같았다. 정식으로 사진을 배우고 사진가가 된 그는 과거 자신이 찍었던 사진과 새로 찍은 사진을 모아 2006년 첫 전시회를 열었다.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한다. 해리슨과 클랩턴이 아니었다면 보이드의 사진을 볼 이유가 있겠냐고. 쟁쟁한 두 음악가의 뮤즈로 살다가 지금도 그 둘 덕분에 사진가로 활동하며 전시회를 하는 거 아니냐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보긴 힘들다고. 어떤 삶을 살아왔든 ‘나는 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패티 보이드는 주체적으로 그들을 사랑했고, 주체적으로 그들에게 영감을 줬으며, 주체적으로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시회에서 본 그의 사진들에서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턴을 향한 그만의 시선과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사진은 이런 의미라고 한다. “결코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붙잡는 일, 나의 연인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내가 가장 즐거웠던 시절을 담았던 일.” 결국 그는 자신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사진에 담았고, 그 사진은 세상의 많은 이에게 즐거움과 행복함을 전파한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된 셈이다. 그는 뮤즈의 본래 의미인 ‘예술의 여신’이 되었다. 패티 보이드는 두 남자와의 삼각관계로 얼룩진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냐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임 미.”(I’m me) 그렇다. 어떤 삶을 살아왔든 나는 나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가 쌓여서 내 삶이 된다. 음악 애호가로서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턴의 사진을 보러 갔다가 패티 보이드라는 한 여성의 온전한 삶을 봤다. 그는 나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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