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1집(1985) 활동을 끝으로 조덕환(왼쪽 사진 오른쪽 위)은 밴드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2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들국화 재결성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지난 11월14일 세상을 떠났다. 한겨레
조덕환은 1987년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반평생 같이할 아내와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음악에 대한 마음을 늘 품고 있었지만,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했다. 마트, 양복점, 택배회사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평소 우상으로 여겨온 한대수를 뉴욕에서 만난 건 필연이었을 것이다. 한국 포크의 대부 한대수는 고국에서 추방되다시피 해 그보다 먼저 미국으로 건너와 있었다. 둘은 주말마다 만나 음악 얘기를 나누고 여기저기 공연장도 찾아다녔다. 밥 딜런, 폴 사이먼, 에릭 클랩턴 등의 공연을 찾아다니며 음악에 대한 열망을 달랬다. 록의 뿌리인 블루스의 역사를 독학하기도 했다. 2009년 외교관인 형님이 정년퇴직을 하자 그 또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들국화 시절 음악 하는 걸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이제 형님도 은퇴했으니 저도 자유롭게 놔주세요.” 아버지는 더는 막지 않았다. 2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들국화를 재결성하고 싶었다. 들국화는 1986년 발표한 2집의 부진 이후 해체했고, 1990년대 중반 전인권의 주도로 3집을 냈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조덕환의 제안에 최성원과 주찬권(2집부터 들국화 정식 멤버로 합류)은 기꺼이 동의했지만, 문제는 전인권이었다. 약물중독 후유증으로 심신이 심하게 흐트러진 그는 좀처럼 재기가 어려워 보였다. 전인권의 서울 삼청동 집을 열 번도 넘게 찾아간 조덕환이 내린 결론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였다. 그는 먼저 솔로 음반을 내기로 했다. 최성원과 주찬권이 연주를 도왔고, 한대수는 음반 속지 사진을 찍어줬다. 암 투병 중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 2011년 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음반 <롱 웨이 홈>(Long Way Home)을 발표했다. 자전적 얘기를 꾹꾹 눌러 담은 곡 <수만 리 먼 길>에서 그는 노래한다. “흩어져 간 세월의 그 뒤안길 밟으며/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묻혀버린 세월의 잊혀가는 기억들을/ 나는 다시 찾아가야 하는데/ 난 돌아가리 찾아가리 수만 리 먼 길을/ 정녕 가야 하는 길이라면” 9분30초에 이르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영원의 시간 속으로>는 허성욱을 기리는 곡이다. “성욱이 어린 시절부터 장례 치르는 과정까지 담다보니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앨범 발매 직후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음악을 다시 하게 돼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꾸준히 창작과 연주에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입니다. 언젠가는 들국화 재결합도 꼭 이뤄내고 싶어요.” 2012년 5월, 들국화 재결성 기자회견이 열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조덕환은 없었다.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이 마이크 앞에 섰다. 조덕환이 참여하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서로 얘기해봤는데, 뭔가 잘 안 통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같이할 수 있습니다.” 전인권의 답이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조덕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로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참여하지 못한 건 정말 아쉬워요. 재결성한 들국화가 잘되길 바랍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들국화 재결성은 끝내 미완으로 그쳤다. 2013년 10월 주찬권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집에서 쓰러진 뒤 깨어나지 못했다. 두 달 뒤 주찬권의 드럼 연주가 담긴 들국화 음반이 발매됐지만, 전인권과 최성원만 남은 들국화는 흐지부지되어 또다시 흩어졌다. 조덕환은 틈틈이 공연도 하고 곡도 쓰면서 조용히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어야 했다. 십이지장에 암세포가 생겼다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으니 상태가 좀 나아졌다. 올 3월 공개된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은 그의 마지막 공식 라이브 영상이 되어버렸다. 들국화 1집 수록곡 <세계로 가는 기차>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와 미발표 신곡 <파이어 인 더 레인>(Fire in The Rain)을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 힘이 넘친다. 마지막 순간 전인권만은 알아본 그 마지막 무대에 남은 열정과 회한을 모두 쏟아냈던 걸까? 이후 건강은 다시 안 좋아졌고, 11월14일 끝내 우리 곁을 떠났다. 고인이 눈을 감기 불과 나흘 전, 전인권이 병실을 찾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전인권이 그의 투병 소식을 들은 건 지난 11월8일이었다. 놀란 마음에 병실로 달려간 전인권은 조덕환의 손을 꼭 잡았다. 사경을 헤매느라 사람도 제대로 못 알아보던 조덕환이 전인권만은 알아봤다고 한다. “요즘 잠에서 깨면 문득 덕환이 영정사진이 보여요. 25살에 처음 만났는데, 덕환이가 그때 만든 노래들 정말 대단했지요. 밴드를 계속 같이 했어야 하는 건데 후회도 되고, 그런 생각들이 나면서 혼자 눈물 콧물 흘렸어요.”(전인권) 조덕환은 마지막 순간까지 솔로 2집을 준비 중이었다. 유작 음반이 빛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언젠가 꼭 들을 수 있을 거라, 나는 믿는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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