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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민물고기에 고춧가루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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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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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북집 메기백숙.

음식명가를 찾아나서 1천여집을 헤아릴 때까지는 소문이나 고객들이 몰리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3천집을 넘어선 지금은 그 기준이 확실하게 바뀐 것을 스스로 느끼며 이제서야 눈이 열리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음식보다는 먼저 주인을 보게 되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고 있다. 주인을 보고 담아낸 음식을 대충 훑어보면 음식 맛과 내용이 거의 정확하게 짚인다. 청주시 주성동 경북집 조향남(75)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경북집(043-211-9200)은 청주시는 물론 충청북도가 자랑하는 음식명소다. 충북은 바다와 접한 데가 없는 대신 괴산과 단양,충주호와 대청호 등 수많은 하천과 저수지에서 나는 민물고기가 비교적 풍성하다. 조씨 할머니는 특산물과도 같은 신선한 민물고기로 전국에 하나뿐인 민물고기백숙을 주메뉴로 낸다. 규모도 민물고기 전문점으로는 이만한 곳이 별로 없다.

부드럽고 담백하기 이를 데 없는 민물고기백숙은 아무리 민감한 식성을 가진 고객들이라도 꺼리지 않을 만큼 전혀 냄새가 없이 고소하다. 그 깊고 순한 맛이 신기할 지경이다. 맵고 짜고 얼큰한 맛 일색인 매운탕집의 통속적인 개념을 넘어선 셈이다. 쏘가리매운탕과 새뱅이탕, 조림과 찜 등 매운 것은 매운 대로 손색이 없으면서, 쏘가리와 장어, 메기 등을 백숙으로 한 요리는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쾌감을 안겨준다.

사진/ 좋은 음식으로 고객들의 건강까지 보살필 수 있게 된 것이 언제나 감사하고 보람있다는 조남향 할머니.
1970년 내덕동 천주교회 앞에서 문을 열어 지금의 자리로 옮겨앉기까지 32년째를 맞고 있는 조씨 할머니는 매운탕이 좀 맵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고객들의 간청을 예사롭게 여기지 않고 10여년을 고심한 끝에 진미인 민물고기백숙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온 할아버지들은 80평생 메기백숙이란 말은 물론, 이처럼 부드럽고 구수한 민물고기 맛은 처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간병식으로 주문이 이어지고, 점심시간이면 젊은 직장 여성들이 단체로 찾아와 회식을 즐기고 간다.

맑은 물에 담아놓은 싱싱하게 살아 있는 쏘가리와 장어, 메기 등으로 즉석에서 회를 뜨듯 내장과 뼈를 거둬낸 뒤, 인삼과 밤, 대추, 잣, 마늘과 감자 등 10여 가지의 약재와 양념을 넣고 푹 끓여내 두툼한 솥에 담아낸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걸죽하면서도 비리거나 텁텁하지 않고, 담백하게 입에 붙는 맛이 난다. 함께 넣은 약재 때문인지 온몸이 훈훈하게 더워지면서 시원한 쾌감이 매운탕 못지않다. 짭짤하면서 깔끔한 밑반찬을 곁들이면서도 가격은 7년 전 그대로여서 크게 부담이 없어 보인다. 쏘가리와 장어백숙이 중(3인분) 6만5천원, 메기백숙은 중 4만원, 소(2인분) 3만원, 대(4인가족분) 5만원.


나도 주방장|빙어조림(도리뱅뱅이)

빙어는 이렇게 먹읍시다

민물고기는 평소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 한 대부분 가정에서 생소한 음식이다. 하지만 겨울철 근교 나들이길에서 빙어나 이와 흡사한 떡매자 등 잔고기들을 어항에 담아놓고 파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겨울철이라 쉽게 상하지도 않고 잘지만 살이 단단한 때여서 조림을 해놓으면 별미 안주 겸 간식거리로 나무랄 데가 없다.

경북집 할머니의 설명을 들어보면 조리법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겨울철에 가장 손쉬운 빙어는 속을 훑어내지 않아도 된다. 프라이팬에 동그라미를 그리듯 차례로 둘러놓고, 들기름이나 식용유를 약간 끼얹어 잠깐 튀겨낸다. 물고기 자체에서 나온 기름이 엉켜붙으면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아, 차례로 튀겨내 접시에 차곡차곡 담아 냉동실에 보관해놓으면 두고두고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튀김이 끝나면 소금을 살짝 뿌려 그대로 사용해도 되고, 간장에 고추장을 약간 풀어 간을 하고 실파와 풋고추, 마늘 등을 잘게 썰어 얹어 다시 한번 조림하듯 바싹 익혀 프라이팬에 얹어 내놓아도 좋다. 접시에 옮겨담아도 형체가 흩어지지 않아 무난하다. 금강 유역에서는 돌려놓은 모습 그대로 도리뱅뱅이라고 부른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맥주나 소주를 한잔 곁들이면 더욱 좋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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