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발매된 헬로윈의 공연 실황 앨범 <라이브 인 더 유케이>(Live in the U.K.) 표지 디자인.
한순간에 헬로윈 팬이 되다 이후 나는 헬로윈의 팬이 되어버렸다. 멤버들의 이름을 외우고 <키퍼 오브 더 세븐 키스>(Keeper Of The Seven Keys) 등 발매 앨범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라이브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은 <어 테일 댓 워슨트 라이트>(A Tale That Wasn’t Right)라는 걸출한 발라드를 무한 반복해 들으며 밤을 지새웠고, <이글 플라이 프리>(Eagle Fly Free)를 들으며 독수리처럼 멋지게 비상하는 꿈을 꾸었다. 오매불망 헬로윈의 새 앨범을 기다리던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핵심 멤버인 기타리스트 카이 한센이 투어 도중 밴드를 떠났다는 걸 뒤늦게 안 것이다. 카이 한센 없는 헬로윈이 1991년 발표한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핑크 버블스 고 에이프>(Pink Bubbles Go Ape)는 실망스러웠다. 카이 한센이 따로 결성한 밴드 감마레이의 앨범을 들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헬로윈의 보컬리스트 미하엘 키스케마저 얼마 있다가 밴드를 떠났다. 나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완전체 헬로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헤비메탈 밴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메탈리카, 메가데스 같은 묵직하고 장엄한 스래시메탈 밴드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헬로윈은 잊혀졌다. 헬로윈과 감마레이 모두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지만, 심지어 두 밴드의 합동 내한공연이 2008년과 2013년 두 차례나 열렸지만, 난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2016년, 페이스북에서 본 사진 한 장은 1989년의 그 기억을 소환해냈다. 헬로윈 카세트테이프는 언제 버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앨범은 절판된 지 오래다. 국내 음원 사이트에도 없다. 나는 김학선에게 그 앨범 나에게 팔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학선은 메시지를 보냈다. “중고 앨범 파는 사이트를 알려드리지요.” 그리운 마음에 5만2천원 결제 링크를 따라가보니 두 장이 있었다. 일본에서 발매된 LP 미니어처(LP 앨범을 줄인 모양으로 만든 CD 앨범) 한정판이었는데, 하나는 5만2천원, 다른 하나는 3만5천원이었다. ‘뭔 차이야?’ 하고 살펴보니 비싼 건 ‘오비’(OBI)가 붙어 있었다. 일본 앨범에 주로 있는, 앨범 홍보 문구가 적힌 띠지를 말하는 건데, 수집가들 사이에선 이게 있느냐 없느냐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인 듯했다. 난 사실 있는 오비도 다 떼어서 버리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헬로윈의 이 앨범만은 왠지 오비까지 갖춘 걸로 사고 싶었다. 완전체 시절의 헬로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랄까. 결국 5만2천원을 결제했다. 앨범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엊그제 받은 배송 시작 알림 문자만으로도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아마 오늘 퇴근하면 집에 앨범이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난 조심조심 CD를 꺼내어 요즘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CD플레이어에 넣고, 관객들의 “해피 해피 핼러윈~”부터 맨 마지막에 페이드아웃되는 관객들의 “헬로윈 헬로윈~” 함성까지 하나하나 곱씹을 것이다.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이번 긴긴 추석 연휴는 ‘백 투 더 퓨처’의 시간이 될 것 같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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