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민족의 정서적 느낌을 살리는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달’은 지난해 10년 만에 두 번째 앨범을 냈다. 첫 앨범 때 아일랜드풍의 연주곡 <서쪽 하늘에>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엔 발칸반도 집시풍의 노래들 사이에서 판소리 <춘향전>에 등장하는 ‘사랑가’를 변주한 곡이 귀를 붙든다. 유어썸머 제공
2008년 광화문 거리에서 김현보를 만난 적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현장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민초들의 한을 담은, 그야말로 거리의 음악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그들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바드는 박혜리와 새 멤버 루빈의 2인조로 정비됐다. 구한말 소리꾼과 유럽 악단의 만남 같은 2012년 두번째달이 다시 떠올랐다. 두번째달 이름으로 디지털 싱글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를 발표하고 단독공연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김현보와 앨리스인네버랜드가 2011년 다시 합쳐 두번째달을 재결성한 것이었다. 두번째달 1집 때부터 세션 기타리스트로 참여한 이영훈까지 정식 멤버로 합류해 6인조가 됐다. 다만 박혜리의 바드는 계속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번째달은 지난해 무려 10년 만의 새 앨범인 2집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를 발표했다. 발칸반도 집시풍의 <구슬은 이미 던져졌다>, 1집 때 멤버였다가 고국 아일랜드로 돌아가 가수를 하는 린다 컬린이 보내온 노래에 연주를 입힌 <페이퍼 보트> 등 대부분이 기존 색깔의 연장선상이었지만, 단 하나 이질적인 곡이 있었다. 앨범 타이틀곡인 <사랑가>였다.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인 ‘사랑가’를 소리꾼 이봉근이 부르고 두번째달이 연주한 독특한 형태의 곡이었다. 그걸 듣고 우리 판소리가 그렇게 좋은지 처음 알았고, 서양식 연주와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특별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4년 7월 국립극장 주최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 ‘고래야’와 합동공연을 했는데, 이를 본 정동극장 관계자가 소리꾼 이봉근과 두번째달이 <춘향가>를 재해석하는 무대를 제안한 것이다. “1920년대 구한말 소리꾼과 유럽 악단이 만나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를 상상하며 만든 무대는 큰 호응을 얻었다. 결국 지난 4월 두번째달의 국악 프로젝트 <판소리 춘향가> 앨범 발매로까지 이어졌다. 젊은 소리꾼 김준수와 고영열이 함께한 14곡이 담겼다. 모든 곡이 다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이별가>에서 가장 큰 감흥을 얻었다. 1집 앨범 수록곡 <얼음연못>을 차용한 선율 위로 흐르는 김준수의 소리를 듣노라면, 불처럼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가 금세 이별해야 했던 성춘향과 이몽룡의 애끓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나는 우리 소리와 서양 음악을 이토록 완벽하게 조화시킨 음악을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 앨범을 접한 뒤로 판소리 자체에도 흥미가 생겨 찾아듣고 싶어졌다. 세계 여러 나라 민속음악을 연주하던 두번째달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지구를 돌고 돌아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남미 민속음악을 탐닉하던 그들은 이제 우리 음악의 뿌리를 찾아 자신들의 자양분을 접목해 새로운 싹을 틔워내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귀환이다. 치우침의 그림자가 없는 음악 문득 12년 전 첫 인터뷰 때 그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태초에 빅뱅이 일어나면서 우주와 지구가 생겨날 때 만약 지구 주위의 농도나 온도가 조금만 달랐어도 달이 두 개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됐다면 인류는 해와 달, 흑과 백, 음과 양 등 이분법적인 편협함에서 훨씬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요? 확고한 음악적 벽들을 허물고 사람들의 가슴에 새롭게 다가가는 밴드가 되고 싶습니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유효했으면 한다. 다시 떠오른 두번째달은 기욺 없이 그렇게 언제까지나 세상을 비추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편협함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사라지도록 말이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한겨레> 대중음악 담당 기자 * ‘서정민의 음악다방’ 연재를 시작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음악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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