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속에 숨쉬는 전통
등록 : 2002-01-02 00:00 수정 :
사진/ 한끼 식사로 알맞은 가야의 호박죽과 팥죽.
음식의 참맛은 담백함에 있다. 우리 음식의 고유한 특성은 바로 담백함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같은 동양권이지만 중국 음식처럼 기름지거나 향신료를 얹어 맛을 치장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먹는 상차림에서 잔칫상에 이르기까지 소박하면서 기품있고, 가짓수가 수십 가지 올라 상다리가 휘어지는 듯하지만 어느 하나 튀는 것이 없고, 각각 제맛을 지니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신비스러울 만큼 짜임새 있다. 소박하면서도 어느 나라 음식에 비견할 수 없으리만큼 손색이 없다.
가야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지하에 있는 조촐한 한과점이다. 하지만 한식맛의 기본을 제대로 갖춰 내며 20년 가까운 내력을 쌓고 있다.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여주인의 깐깐한 성깔이 이같은 맛을 뒷받침한다. 한차와 한과 전통죽과 떡을 전통음료와 함께 갖춰 내는데, 어느 것이나 간이 맞고, 향이 짙거나 지나치게 달지 않다. 담는 그릇이나 색깔도 소박하고 정갈할 뿐 이런저런 장식이 없다. 하나하나가 담백한 자연의 맛을 그대로 내준다는 것이 주인의 자랑이다.
메뉴 구성이 간결하지만, 단순한 입가심을 넘어 약효를 지닌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만큼 손이 많이 가고 들어가는 재료와 정성이 만만치가 않다. 시중 찻집들에서 내는 인스턴트 식품의 개념이 아니고, 기본 재료들을 하나하나 신선한 것을 선별해 달이거나 푹 우려내 바탕에서 배어나는 순수한 맛을 살려낸다. 그래서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옛맛을 되새길 수 있고, 보약을 먹는 것처럼 진하고 개운한 뒷맛이 편안한 기분을 안겨준다.
대추차, 쌍화차, 오미자차, 솔잎차, 식혜와 수정과, 여름철에 내는 매실차 등이 그렇고, 식사를 겸해 내는 호박죽, 잣죽, 흑임자죽, 호도죽을 즉석에서 갈아 끓여 내 담백하면서 신선한 맛을 낸다. 특히 늙은 호박을 그날그날 삶아 찹쌀가루를 풀어 쑤는 호박죽이나 팥을 직접 삶아 끓이는 팥죽은 인절미 몇개와 백김치, 구운 김을 곁들이는데,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부담없는 아침식사로 안성맞춤이다.
아침 6시30분이면 재료를 손보기 시작해 빌딩의 출근시간이 시작될 무렵인 8시부터는 죽과 그날 끓인 차가 준비된다. 가깝게 사무실을 둔 회사들은 아침 일찍 모이는 모임에서 호박죽을 주문해 식사를 대신하며 회의를 진행하기도 해, 아침시간에 죽이 가장 많이 나간다고 한다. 점심과 오후시간 차와 함께 내는 한과와 떡, 약과는 개업 때부터 가회동 떡집 한곳을 정해놓고, 인절미와 송편, 꿀떡, 계피떡 등, 먹음직스럽고 먹기 편한 것들을 그날그날 골라오는데 간식감으로 인기있다. 그 밖에 사무실의 고사떡이나 행사떡을 주문받아 마련해주기도 해 도심 속에서 우리의 고유한 맛을 부담없이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일반차 3천원, 쌍화차 4천원, 죽 4천∼5천원선이다.
나도주방장|식혜와 다식
한식 음료, 영양가 만점! 사진/ 가야의 대표적인 음료로 꼽히는 식혜와 쌍화탕. 식혜는 수정과와 함께 가장 대표적 한식 음료다. 한식집에서는 어디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누구나 큰 어려움 없이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식혜를 만드는 방법을 주인 박선희(55)씨는 다음과 같이 일러준다.
멥쌀을 충분히 불려 솥에 안치고 밥물을 조금 적다 싶을 정도로 잡아 뜸을 푹 들이면 알맞은 고두밥이 된다. 밥이 뜨거울 때(식기 전에), 엿기름을 조리에 걸러 찌꺼기가 가라앉아 맑게 우러난 물을 보온솥에 붓고 밥을 말듯 고두밥을 넣어 4∼5시간쯤 덮어둔다. 밥알이 3∼4알씩 떠오르기 시작하면 밥알이 삭고 있다는 표시인데, 이때 솥이나 냄비에 옮겨 붓고 약 30분쯤 팔팔 끓여 다린다. 따끈할 때 먹으면 ‘감주’고 식혀서 냉장고에 넣고 시원하게 먹으면 ‘식혜’다. 그러나 감주는 식혜를 달이는 부엌 앞에서 서서 마시는 것이고, 식혜는 차게 식혀 소반에 받쳐 격식을 차려 먹는 것이어서 식혜를 더 양반스럽게 여기는 것이 전래의 관습이라고 한다. 겨울철은 1주일쯤 두고 먹어도 되지만 담근 뒤 2∼3일 지날 때가 가장 제맛이 난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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