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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역국의 기적

재료를 잘 다뤄야 아이 침 같은 맛이 나는 미역국…너로 인해 태어남이 비로소 기적이 되는 생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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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19 23:25 수정 : 2016-01-23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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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과 미역국. 한겨레

알배기 멸치 한 줌을 솥에 넣고 볶아 비린내를 날리고 맑은 물을 부어 맛국물을 우려내는 일로 그날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멸치국물이 우러나는 동안 마른 미역 한 줌을 꺼내 차가운 물에 불렸다. 초겨울에 딴 어린 미역인지 물이 닿자마자 부들부들 살아나 짙은 초록빛을 띠며 반짝거렸다.

우러난 멸치국물에 마늘즙과 무즙을 한 숟가락씩 넣고 면포에 받쳐 맑은 맛국물을 걸러냈다. 맑은 맛국물에 깨끗이 씻은 미역을 넣고 약한 불로 오랫동안 끓였다. 미역은 오래 끓여야 부드럽고 국물 맛이 좋다. 미역이 부드러워졌을 때 조랭이떡만 하게 자른 가래떡을 넣고 뜸을 들인 뒤 멸치액젓과 국간장으로 간을 했다.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한 음식이지만 이렇게 단순한 재료로 만드는 음식일수록 맛을 내기는 더욱 어렵다. 여러 가지 재료를 혼합해 만드는 음식은 어느 한 가지 재료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른 재료가 더해주고 안아주고 끌어당겨 부족함을 감싸주지만 미역국이나 콩나물국, 가쓰오부시(말린 가다랑어) 국물, 좁쌀죽 혹은 차와 같은 음식은 한 가지 재료, 하나의 공정이라도 빼먹거나 서툴렀다가는 금세 태가 나고 맛없는 음식이 되고 만다.

단순한 재료라 더욱 어려운

미역국의 경우 멸치와 미역, 간장, 멸치액젓을 선별할 줄 알아야 하고 이것들의 비율과 물의 양, 끓이는 시간을 가늠할 줄 알아야 한다. 좋지 않은 멸치와 미역이라도 좋은 맛으로 바꿔낼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하고 간장과 멸치액젓을 군내 나지 않게 보관하는 방법도 알고 있어야 한다.

끓인 미역국을 그릇에 담아 맛을 보았다. 미역은 부드럽게 익었고 국물은 구수한 멸치 맛과 신선한 미역 향, 청정한 멸치액젓의 맛과 떡에서 우러난 쌀뜨물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아이의 침과 같은 맛이 났다.

그렇게 미역국을 끓여놓고 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미는 손녀 돌상을 봐주러 서울로 가는 버스에 있노라고 말했다. “당신보다 큰 자식 낳고 키우느라 여태 고생 많으셨소.” 이맘때면 매년 하는 인사말이지만 같은 말에 묻어간 마음은 매년 조금씩 달라진다. “그려, 자식이 어미보담 커야지. 밥은 먹었냐?” “이제 막 미역국 끓여놓고 전화하는 참이오. 밥은 자시고 올라가오?”


때가 되면 하는 짓이다. 배꼽 달고 세상에 나왔으니 1년에 한 번은 이 짓을 한다. 식구가 일곱이던 시절에 어미는 네 자식과 지아비, 시어미 그리고 본인의 생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미역국을 끓이고 찰밥을 지어 밥상에 올렸다. 아비와 할머니의 생일상에는 좀더 다양한 음식이 오르긴 했어도 미역국과 찰밥이 빠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클 놈들은 크고 죽을 사람은 죽고 나자 자연스럽게 미역국과 찰밥이 밥상 위에 오르는 날은 줄어들었고 이제는 일부러 그날을 기억하려 애쓰지도 않는 눈치다. 제 밥 찾아 먹을 만큼 키워놓았으니 그만하면 된 것이다.

“누나들이랑 형 생일은 다 잊어먹고 지나가버렸는디 애기 돌 때가 니 생일이드라….” 생일을 며칠 앞두고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를 손에 들고 시골집에 갔더니 어미가 하는 말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생일 아침에는 어미에게 찾아가 밥을 지어달라 청해왔는데 올해는 작년에 태어난 조카 돌잔치와 겹쳐 찾아와도 밥을 지어줄 수 없다는 말을 이렇게 에둘러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리 온 것 아뇨. 그날은 내 알아서 미역국 끓여 먹을 테니 오늘은 다구새끼나 나눠 먹읍시다.”

어머니와 나의 생일

그럼에도 생일상 봐주지 못할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주방으로 나가 얼마간 달그락거려서는 팥국수 한 그릇과 동치미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지난가을에 거둬들인 팥 중에 잘나고 예쁜 것들은 동짓날을 전후해 장에 내다 팔고 못난 것들을 모아 팥국물을 냈는데 그 맛이 시장에서 사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진하고 구수한데다 부드러웠다.

본디 팥국물이란 팥을 무르게 삶아 소쿠리에 놓고 짜내 거피를 걷어내야 부드러운데 이 일이 고되고 귀찮다보니 대량으로 만들 때는 분쇄기에 넣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하면 일은 수월할지 몰라도 거피가 가루로 남아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해져 뒷맛이 좋지 않다. 분쇄기가 없는 어미는 팥을 쥐어짜느라 얼마간 고생은 하였을지 몰라도 그 맛은 근래 찾아보기 드문 옛 맛 그대로였다. 거기에 더해진 시원한 동치미 한 대접이면 미역국과 찰밥이 뭐 대수겠는가. 암만.

아마도, 단 한 번도,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진심으로 감사하게 여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밀어낸 자식 허투로 여기지 않고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 이렇게 꼴 지은 정성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여 어미가 밥을 지어주지 못하더라도 내 손으로 맑고 순한 미역국 끓여 치성 드리듯 내 입에 떠넣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정화수 같은 것이다. 첫새벽 신과 대면하기 위해 정화수 떠놓고 외로운 시간으로 발을 들이듯 나라는 존재의 시작과 대면하기 위해 맑은 미역국을 끓여 내 입에 떠넣었다.

단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에 태어남은 타인으로부터 축하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친구는 “예수의 탄생은 축하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는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을 떠안기 위해 지상에 내려온 것인데 어찌 그 숙명의 시작을 축하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가르침에 감사하고 그가 대신 떠안고 감내했던 고통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의 말처럼 예수의 탄생은 감사하고 미안하게 여길 만한 이유가 분명하지만 단독자인 나는 내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우므로 축하받을 이유가 없고 누군가가 감사해하거나 미안해할 이유도 없다. 앞서 말했듯이 어미는 ‘제 밥 찾아 먹을 만큼’ 키우는 것으로 분신의 자립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냈으므로 감사하거나 미안해할 사람은 오히려 나이고 두 사람(어미와 나) 사이에서만 생일은 의미를 갖는다.

“니가 있어서 나는 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느끼는 고통을 본인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나와 다른 단독자를 만나게 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생일은 다른 의미가 된다. 그럼으로써 나는 단독자가 아니게 된다. 나는 그녀에게 말한다. 사랑한다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그녀도 나에게 똑같이 말한다. 사랑한다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의미를 구체화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방법이라면 찰밥에 미역국이건 팥죽에 동치미건 무슨 상관이랴. 손을 잡고 약속한 길을 걸을 수도 있고 홀딱 벗고 춤을 추어도 상관없다. 지난해에는 정성 들여 만든 약식을 나눠 먹었고 올해는 그녀가 빚어온 만두를 나눠 먹었다.

“고맙다! 드럽게 외로운 세상에 니가 있어줘서 나는 살겠다! 니가 있어서 내가 살겠으니 너의 생일은 나에게 축복이다. 니가 고통받아 사라지면 나는 살 수 없으므로 니 고통을 내가 대신 떠안을 테다!” 생은 미역국처럼 단순하지만 의미가 되기는 어렵다. 예수의 기적만큼이나 대단한 그놈과 그년의 기적이 필요하다.

전호용 식당 주인·<알고나 먹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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