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갈등에서 벗어나 처연하게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그때, 우리 할머니가 그랬듯 뜨끈한 호박물을 여유 있게 맛볼 수 있을까. 한겨레 탁기형 기자
단것이 당기는 날은 술이 당기는 날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술이 당기는 날은 몸에 어느 정도 기운이 남아 있어서 술을 감당할 수 있겠다는 말이지만, 단것이 당기는 날은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버렸다고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뜨끈한 아랫목과 두툼한 담요, 그리고 꿀단지가 필요한데 아무것도 만족시켜주지 못하니 다급하게 사탕이라도 입안에 밀어 넣어줘야 했다. 그렇게라도 달래주지 않고 버티거나 모른 척하면 지독한 몸살이 찾아왔다. 어느 해에는 그 신호를 술을 달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소주 한 병 마셨다가 사흘 밤낮을 끙끙 앓았고, 다른 어느 해에는 링거를 꼽고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기운만 센 젊음이 싫었던 젊은 날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자연에서 내 손으로 구한 것만 먹고 살아보겠노라 결심하고 전국의 산과 들, 해안가를 여행했다. 그 결심을 철저하게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그 뜻을 견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매우 많지만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내 몸과 자연이 나에게 전하는 말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이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몸으로 자연을 견뎌야 했으므로 몸은 정신보다 우위를 점하고 자연과 직접적으로 대면했다. 몸보다 생각을 앞세웠을 때 몸살이 나고 찢어지고 깨지고 부서졌다. 여행 초반엔 생각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주길 바랐지만 중반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몸을 따랐다. 몸이 쉬자고 하면 며칠이라도 쉬었고, 견딜 만하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해내고 말았다. 몸을 따르자 자연은 불편해하지 않고 밥을 내줬다. 여행 초반엔 밥을 구하지 못해 20kg 이상 살이 빠졌지만 중반 이후에 몸은 계절과 날씨, 밤과 낮의 변화, 달과 해의 움직임에 맞춰 잠들고 깨어나고 밥 먹고 똥을 싸며 적응해 강건해졌다. 먹지 못하면 며칠이고 똥을 싸지 않았다. 변비가 아니었다. 먹지 않았으므로 앞서 먹었던 것을 내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날이 추워지자 혈액 안에 지방을 축적했다.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일반인보다 수십 배 높은 지방이 혈액에서 검출됐다며 고지혈증을 의심했지만, 나는 무척이나 말랐고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여름엔 더위를 견뎌내기 위해 몸 스스로 서늘해졌고 겨울엔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혈액 안에 지방을 가득 품었다. 살아 있는 하나의 존재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호두 껍데기와 알맹이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것이지만 껍데기와 속살이 하나여야만 온전한 호두 한 알이 되는 것처럼, 몸과 나는 다른 존재지만 조화를 이뤄 합쳐져야만 ‘나’라는 온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 전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비롯한 통증(부끄러움까지 포함한)을 감당할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운만 센 ‘젊음’이 싫었다. 힘을 버리고 지혜와 바꿀 수 있다면 그리하겠노라 다짐했던 날들이 촘촘했다. 아주 어린 나이에는, 알아먹지 못해 답답한 그 젊음이란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늙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비나 어미만큼 늙어서는 그 편안함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나 할머니 또래의 할아버지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만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신경 쓰지 않고 세계와 직접 대면한다고 여겼다. 쭈글쭈글해진 몸과 후줄근한 차림새를 바라보는 시선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그 처연함이야말로 내면의 갈등이 사라지고 편안해진 상태라고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에 생각했었다. (이렇게 근사한 말로 생각했던 건 아니다. “살 만큼 살았는디, 뭐”라고 말할 때의 그 쿨함이 내 눈엔 끝내주게 멋져 보였다. 엄마·아빠는 늙은이의 허튼 투정으로 치부했으므로 그들은 아직 멀었던 것이다.) 쭈글쭈글해진 몸에 서린 편안함 아직 나는 젊어서, ‘젊어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 몸이 전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좋다’고는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봄볕 아래 쪼그려 앉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저기 먼 세계를 내려다볼 때까지 나이를 먹어도 젊음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원숭이 새끼처럼 까불던 어제까지의 나를 떠올리면 아찔해서 눈이 질끈 감기기 때문이다. 언제쯤 나는 이러한 부끄러움에서조차 벗어나 홀가분하게 꿀단지를 품에 안고 쌉싸름하지 않고 달콤하기만 한 호박물을 뜨끈뜨끈 떠먹을 수 있을는지…. 전호용 식당 주인·<알고나 먹자>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