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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마시면 씹히는 생선살의 감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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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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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남부 영일만을 지나다 보면 어느 횟집이나 메뉴에 물회가 올라 있지 않은 곳이 별로 없다. 최근에는 북쪽에 있는 강릉이나 속초에서도 물회가 간혹 메뉴에 올라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곳 물회는 한치나 새끼오징어, 물가자미물회 정도에 한정되어 있고 영일만 사람들같이 폭넓게 즐기지는 않는다. 멀리 제주도에서도 예로부터 자리물회가 국처럼 식탁에 오르지만 자리돔에 한정되어 있고 간혹 옥돔을 물회로 쓸 정도다.

영일만 물회는 실로 다양하다. 한치와 오징어는 물론 가자미, 광어, 도다리, 우럭과 노래미가 주대상이고, 그 밖에 쥐치와 고둥, 전복까지 물회를 말아 시원한 맛을 즐긴다.

물회가 일반회와 다른 것은 첫째, 회를 뜰 때 곱게 채치듯 횟감을 잘게 썰어 접시에 담지 않고 큼직한 대접에 안친다. 그 위에 배와 당근, 양파, 쪽파, 쑥갓, 상추 등 야채를 채쳐 얹은 뒤 고추장을 듬뿍 얹어주거나 따로 고추장 그릇을 곁들인다.

다음은 따끈한 밥과 국이 따라나오고, 곁들이는 찬도 일반회와 달리 김치는 물론 조림, 젓갈 등 밑반찬이 5∼6가지나 일반 상차림처럼 넉넉하게 오른다. 끝으로 가장 특이한 것은 이슬이 듬뿍 맺힌 시원한 물주전자가 따라나오고 회 그릇에도 얼음을 몇 덩이씩 얹어주는 것이다.

먹는 이의 취향에 따라 처음에는 그대로 비벼 반주를 한두잔 하고, 물을 자박자박하게 부어 밥을 비비기도 하고, 물을 넉넉하게 부어 냉국에 말 듯 밥을 말아먹기도 한다. 그래서 물회는 엄격히 따져 회가 아니고 ‘생선냉국’ 또는 찬 ‘술국’으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실제로 동해 남부 사람들은 물회를 가장 이상적인 해장국으로 꼽는다.

아무튼 그냥 맨고추장을 얹은 채 골고루 비벼 싱싱한 야채와 매콤한 고추장 맛으로 먹는 맛도 색다르지만 시원하게 물을 말아 훌훌 마시는 기분도 생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고 상쾌하기 이를 데 없다.

더욱이 밥을 말 때는 금방 지어냈거나 보온기의 온도를 높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뜨꺼운 밥을 내놓는다. 얼음이 둥둥 뜬 냉국에 말아놓은 따끈한 밥알은 유난히 오돌오돌하게 매끄럽고, 생선 채썬 것과 야채 등과 함께 씹히는 밥알의 질감이 유별나면서 뒷맛이 달착지근하게 살아난다.


물을 약간만 붓고 고추장을 듬뿍 넣어 밥을 비빈 뒤, 머리와 뼈를 넣고 곰국처럼 끓여내 생선국물을 떠마시며 먹는 재미도 구수한 여운과 함께 물횟집에서나 느껴볼 수 있는 별미가 아닌가 한다.

이름난 물횟집/

1 별장회타운=구룡포 해수욕장에서 장기곶 등대쪽으로 작은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삼정 어촌에 자리잡고 있다. 오징어의 본고장을 바로 곁에 두고 있어 오징어철인 여름과 초겨울까지는 오징어물회가 주를 이루고,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 겨울에는 한치물회를 대신 낸다. 오징어뿐 아니라 주치물회, 가자미물회도 메뉴에 올라 있어 물회맛을 폭넓게 즐길 수 있다. 상차림도 삶은 고동, 백합조개, 과메기, 미역나물, 해조류무침과 젓갈 등이 깔끔하게 따라나와 세련된 모습으로 입맛을 돋운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건물의 2∼3층을 민박으로 내놓아 하루쯤 묵어와도 좋다. 오징어물회 1만2천원.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삼정1리(054-284-2408).

2 어림복집=어림복집은 포항시내 죽도2동에 있는 복전문집이다. 죽도 어시장에서 나는 활어복으로 신선한 복지리와 복매운탕 등 복요리를 다양하게 내놓는 이름난 포항의 음식명소다. 이곳 물회는 특이하게 영일만의 특산물이기도 한 백고둥으로 물회를 말아내 각별한 맛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여름철 계절식으로 내던 것을 고객의 요청으로 겨울철은 후식 겸 식사로 내다가 최근에는 정식 메뉴에 올려놓고 있다. 산 고둥살을 얇게 썰어 안치고 배와 당근, 쪽파, 상추, 마늘 등 갖은 야채와 양념을 채쳐 얹은 뒤, 얼음을 몇알 얹고 참기름을 살짝 뿌려 내놓는다. 시원한 물을 붓고 훌훌 떠마시는 맛이 담백하기 이를 데 없고 밥을 몇 숟갈 말면 더욱 별미다. 물회 7천원. 포항시 죽도2동(054-275-5501).

3 원조 포항물회=포항시내에서 첫손 꼽을 만큼 내력이 오랜 물횟집이다. 조흥은행과 국민은행이 대각선으로 맞물려 있는 상원동 사거리에서 50년 가깝게 물회 한 가지를 전문으로 해온다. 창업주인 70대 후반의 할머니와 대물림할 며느리가 직접 말아내는 물회맛이 물회의 본고장에서도 제맛을 인정받고 있다. 물회 1인분 1만원. 포항시 북구 상원동(054-247-2900).

이사람의 맛내기/ 포항물회집 김덕순 할머니

포항 사람이 그 집을 모를 리 있나

포항시내 번화가인 상원동 패션거리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포항물회집은 포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 주인 김덕순(76) 할머니는 30살 되던 해 이곳에 물횟집을 열어 지금까지 47년째 한 자리에서 물회 한 가지만을 고집해 온다. 평생을 물회와 더불어 살아온 셈이다.

물회는 신선한 맛이 첫째 조건이기 때문에 즉석에서 산 것을 잡아 회를 떠야 하며, 그래서 싱싱한 횟감을 마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포항물회집에 들어서면 입구에 설치해놓은 수족관에서 싱싱한 가자미와 도다리, 광어, 우럭 등이 가득 담겨 있는 모습이 일반 활어횟집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주문하는 손님들의 수에 따라 알맞은 크기를 골라내 즉석에서 잡아 회를 뜨고, 곱게 채썰어 배, 당근, 쪽파, 볶은깨, 김가루를 얹어 고추장 그릇을 곁들여 낸다. 양파 대신 쪽파를 고집하고 고추장은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낸다. 찬도 젓갈과 가자미식해, 미나리나물, 생선조림 등이 김치와 함께 곁들여지고, 생선뼈로 끓인 뽀얀 국에 파만 몇점 띄워져 따라나온다. 50년 가까운 반평생을 물회만 말아온 김 할머니의 경험으로는 그 이상도 이하도 필요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 생선이나 다 물횟감이 되지는 않는다. 김 할머니는 물회는 물을 말았을 때 맛도 있어야 하고 영양가도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한끼 식사가 충분히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이곳 물횟집에는 물횟감으로 알맞은 크기의 가자미, 도다리, 광어, 우럭 등 네 가지 생선 이외의 것은 들여놓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 8시면 문을 여는데, 이때는 주로 해장 겸 아침 식사를 하고 가는 직장인들이고 낮시간과 저녁시간은 별미로 물회를 즐기러 오는 외지 손님들과 회를 별도로 한 접시 곁들여 소주를 한잔 하러 오는 포항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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