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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그 많던 개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개구리곰탕: 과학이나 자본으로 만든 먹거리에 열광하는 현대인들, 지구를 지키지 못하고 부르는 유레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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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14 10:46 수정 : 2015-10-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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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마흔에 늦둥이 아들 본 전대창씨. 자전거 페달을 으이 밟아 전북 군산 옥구읍 선제리 옥일연쇄점으로 분유 사러 나섰다. 옥일연쇄점 아주머니 분유 사는 전대창씨 보고 밑도 끝도 없이 “손자 보셨슈?”라고 물었단다. 앞서 태어난 세 남매는 어미젖 먹여 잘도 키워냈는데 늦은 나이 다 된 몸으로 늦둥이를 낳아 그런지 젖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가루우유 뜨지근한 물에 타 먹여 키우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제 누이나 형과는 달리 허약하고 날마다 병을 앓아 낯빛이 누리끼리했다.

생합살 맛, 크림수프 국

닭 잡아 먹이고, 천엽 얻어다 고아 먹이고, 돼지 대가리 푹신 삶아 그 국물 떠 먹여도 만날 비실비실, 코피 쏟고 픽픽 자빠졌다. 그 허약한 어린 것 굽어보던 마을 어느 노인이 개구리 잡아다 한번 고아 먹여보라고 말했다. 그 말 떨어지기 무섭게 서당골 논두렁을 훑어 참개구리 기백 마리 잡아다 가마솥에 넣고 한나절 폭폭 고았다. 가마솥에서 살은 다 녹고 장단지 뼉다구 몇 개 남을 때까지 고았더니 소 뼉다구 곤 것처럼 뽀얀 국물 위에 맑은 기름이 둥둥 떠올랐다. 끼니 때마다 개구리곰국에 밥 말아 어린 것 입에 떠넣어주었다. 그렇게 한 보름 먹였을까. 누리끼리했던 얼굴에 핏기가 돌고 눈빛이 맑아졌다. 코피도 멎고 다리에도 힘이 붙는지 잘 걷고 잘 뛰었다.

우수 경칩 버드나무 물 차오를 때부터 찬 바람 불어 설단풍 떨어질 때까지 서당골 개구락지들 한가로이 논두렁에 앉아 울음 울 시절 없었다. 날 밝으면 작대기 들고 나서는 전대창이 등쌀에 꿱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쫙쫙 뻗어나갔다. 개구락지야 저승사자 제대로 만난 꼴일 테지만 전대창이야 그 작대기질이 얼마나 꼬시고 흥겨웠을까. 허약했던 막둥이 아들놈 개구리 먹고 나날이 사람 모습 갖춰가니 작대기 손에 들고 적벽가 한 대목 흥얼거릴 만하였것다.

그렇게 개구리 입에 붙은 막내아들놈 전호용이, 예닐곱 살 먹자 제 발로 서당골 논두렁을 걸어나가 개구리 잡아먹었다. 국민학교 들어가자 맨손으로 한두 마리 잡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개구리 잡는 창을 제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밥 먹는 쇠젓가락 세 개를 시멘트 바닥에 문질러 바늘처럼 뾰족하게 벼리고 철사줄로 대나무 끝에 단단히 고정해 삼지창을 만들더니 그것 들고 서당골로 향했다.

이제 개구리를 보면 맛있겠다는 생각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잎 위에 앉아 있는 개구리. 전호용 제공

먹으면 곧 죽을 것 같은 천일염?

봄날 무논 잡은 논두렁에 나가보면 전깃줄에 줄지어 앉은 참새처럼 논둑 가장자리로 개구리 수백 마리가 줄지어 앉아 있었다. 사람이 다가가면 일제히 논바닥으로 뛰어들지만 그 물 깊이가 얼마나 된다고. 어린아이 종아리보다 낮은 무논 아래로 숨어봐야 빤히 보이기 마련이라. 물 아래 숨은 개구리를 삼지창으로 콕콕 찍어 잡으면 한나절 안에 한 수대는 거뜬히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 중 넓적다리 실한 놈은 골라 껍질 벗기고 바람 치는 자리에 널어 말려 꾸덕해지면 아궁이 불에 구워 소금 찍어 먹었고, 자잘한 놈들은 가마솥에 넣고 끓여 곰국으로 먹었다. 굳이 맛을 비유하자면 고기의 맛은 생합살과 비슷했고, 국은 크림수프와 비슷한 맛이었다.


음식에 대한 책을 낸 죄로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러면 당신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럽다. 이제는 그러려니 할 만도 한데 여전히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보통은 국수, 콩나물국밥, 아욱국, 두부, 만두, 청국장 따위라고 대답하지만 개구리곰탕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조금 솔직하게 대답해야 하거나 머릿속에 번뜩 그리운 무엇인가가 떠오를 때면 “펑펑 눈 쏟아지는 날 뜨신 방에 앉아 먹었던 벌건 토끼탕”이라거나 “장마가 막 시작된 날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삶은 개수육을 땀나게 먹었던 기억”이라고까지는 대답할 수 있지만 개구리곰탕이라는 대답은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토끼탕이나 개수육만 들이대도 뜨악한 표정으로 사람을 바라보는데 개구리곰탕이라니.

무엇을 먹어라 마라, 무엇이 맛있다 맛없다, 이렇게 먹고 저렇게 먹고 하는 이야기로 날이면 날마다 나라가 떠들썩한 시절이다. 그 실체를 알지 못하고 누군가 만들어준 음식을 음식의 이름으로만 먹다보니 공연히 시끄럽기만 한 것 같아 식재료에 대한 잡설을 알고나 먹자며 늘어놓기도 했었지만 그 또한 별수 없이 그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떠듦’이었던가보다. 그도 그럴 것이 닭 모가지 한번 비틀어본 적 없고, 봄부터 가을까지 벼를 심고 길러 이삭 한 알 거둬들여본 적 없는 사람이 태반인 세상에서 떠들어봐야 쇠귀에 경 읽기고 개구리곰국이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일까. 그러하니 천일염 먹으면 곧 죽을 것 같고, 우유 한 잔 마시면 성인병에라도 걸리는 것 아닌가 걱정되고, 유기농 제품만 골라 먹으면 천년만년 만수무강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닐까.

찬 이슬 내려앉은 날 아침 콩밭 고랑을 걸어가는데 얼룩덜룩한 참개구리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올랐다.

‘그래도 씨가 아주 마른 것은 아니로구나.’

반가워서 달아난 풀밭을 들춰봤더니 오줌을 찍 싸며 다시 한번 펄쩍 뛰어올라 먼 곳으로 숨어버렸다. 이제는 개구리를 보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우선 든다. 작대기나 삼지창으로 아무리 잡아먹어도 그 수가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개구리가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고 은둔자가 되어 콩밭 어느 구석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에게 개구리는 동해에서 자취를 감춘 명태나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어귀에 득실거리다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춰버린 뱀장어처럼 여겨진다.

유토피아는 여기 망쳐버린 지구에

뜬금없는 결론이지만 영화감상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지난해 이맘때 개봉했던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며, 이 영화에 연호하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뜨악했었다. 지구를 농사도 지을 수 없는 황무지로 만든 인간은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유레카를 외친다. 이 땅을, 이 바다를 지켜내지 못했으면서 그 무슨 얼어죽을 과학이며 유레카인가. 공존할 의지는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오염시킨 바다와 땅을 회복시키려는 의지 또한 없으면서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몸에 좋은 것만 먹고 살아보겠다는 편협한 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여준 최악의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였고 관객이었다.

물론 개구리곰탕 따위 먹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만 당신들이 원하는 깨끗한 농·수·축산물과 게랑드소금, 산양유 따위와 같은 것들은 과학이나 자본으로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불편과 위험을 묵묵히 감수해내며 강과 바다, 땅과 공기를 100여 년 전의 그 모습으로 되돌려놓았을 때 우리 이후의 세대가 누릴 수 있는 가치들이다. 유토피아는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버리고 망쳐버린 지구라는 별에 있다.

전호용 식당 주인·<알고나 먹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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