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배에서 찍은 돛단배. 전호용
나 언덕 너머 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등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 해를 가르며 황포돛단배 한 척이 지나갔다. 그 배가 해를 가를 때였을까. 물고기를 낚지 못한 아이는 팔이 부러졌다. 친구의 어미는 아들과 손자를 위해 상다리가 부러지게 밥상을 차렸지만 두 사람은 입도 대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여객선은 내일 정오에나 출항이라 밤새 그러고 끙끙 앓아야 할 판이었다. 보건소엔 부목과 붕대, 진통제만 구비되어 있다고 어린 공보의는 말했다. 할미는 손자의 손을 잡고 울고, 아비는 가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워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나는 나대로 뭣하러 함께 섬에 가자 말했나 싶어 마음 한켠이 무지근하게 내려앉는다. 아비는 아비대로 자책이고 할미는 할미대로 자책이다. 이 먼 섬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손자에게 미안할 노릇이다. 마을 부녀회장인, 친구의 사촌형수가 전화기에 대고 악다구니를 쓴다. 애가 이렇게 다쳤는데 해경이든 해군이든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친구 해가 저물고 섬마을에도 가로등 불빛이 들었다. 그 가로등 불빛 이겨낸 밝은 별들이 총총하게 빛날 무렵 해경에서 연락이 왔다. 어청도 인근에 순찰선 한 대가 있는데 그 배로 아이를 후송할 수 있다는 전갈이었다. 순찰선은 규모가 커서 어청도항에는 정박할 수 없으니 어선을 이용해 방파제 밖으로 나와달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나 밤 10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 배에 올랐다. 진통제 몇 알을 더 먹은 아이는 참을 만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말없이 나무 의자에 앉았고 친구의 사촌형은 조용히 배에 시동을 걸었다. 친구의 어미는 배에 오르지 않고 부둣가에 서서 눈물을 훔치며 훠이훠이 손만 내저었다. 배는 느리게 물살을 갈랐다. 뱃소리에 놀란 멸치떼가 반짝거리며 뛰어올랐다. 가로등 불빛이 멀어져가자 바다는 암흑천지가 되었다. 경계는 통통거리는 엔진음과 차박거리는 파도 소리로만 남았다. 바다는 고요했다. 사방을 훑어봐도 무엇 하나 눈에 드는 것이 없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은하수는 지상의 재앙을 보듬기라도 하듯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여자친구) 이 남자. 바다에 나갔다 돌아온 이 남자는 은하수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불 속으로 파고든 그의 몸이 차가웠다. 함께 가자고 말했으나 나는 밤바다가 무서워 집 안에 남아 있었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해가 내려앉는 바다 위에 나는 떠 있었다. 저 멀리 하얀 등대가 서 있고 그 안에서 그가 손짓했다. 그가 나에게 온 것인지, 내가 그에게 간 것인지 모르겠지만 눈을 떠보니 그가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사촌형 사촌동생과 조카를 해경선에 태워 보내고 잠이 들지 않아 그길로 바다로 나갔다. 시아비 될 사람이 어부인데 추석 선물로 실한 고기 몇 상자는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팔뚝만 한 붕장어 몇 마리라도, 장정 가슴팍만 한 광어 몇 마리라도 보내야 우리 아들 낯이 서지 않겠는가. 조카는 그렇게 뭍으로 나갔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라면서 팔도 부러지고 다리도 부러지고 하는 것이지. 키우다보면 그런 것이지. 친구 섬에 남은 엄마에게 면목이 없어 전화를 못하다가 수술을 마치고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해도 받지 않아 해 질 무렵이 되어서 다시 걸었더니 전화를 받는다. 왜 전화를 안 받느냐고 역정을 내자 어미는 대답했다. “바지락 캤다.” 나 늦은 아침까지 잠을 자고 일어나 친구 어머니 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올라갔다. 어젯밤 차려놓은 그 음식이 그대로 상에 올라왔다. 그 밥 한술 먹이지 못하고 그 밤에 그렇게 돌려보낸 어미이자 할미의 얼굴이 창백하고 꺼칠하다. 밤새 한숨도 못 잔 모양이었다. 그 아들에게 따라줄 소주 한잔 유리글라스에 가득 따라 나에게 건넸다. “다음에 또 와라. 또 와. 엄마가 미안하다. 또 와. 응? 또 와.” 정오가 되어서 여객선이 떠날 때까지 사촌형의 배는 항구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은 고기를 좀 낚으셔야 할 건데. 그래야 아들에게 면목도 서고 며느리 될 처자가 더욱 예뻐 보일 건데…. 은하의 가난한 물고기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전호용 식당 주인·<알고나 먹자>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