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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추위를 다스리는 ‘꿩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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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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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꿩육수에 꿩알을 띄운 춘천 평양냉면집의 꿩냉면.

메밀의 본고장 강원도 내륙의 기온이 영하로 내려앉으면서 냉면과 막국수, 메밀묵 등 메밀음식이 제맛나는 시절을 맞고 있다. 아마도 찬 성질을 지닌 메밀과 차가운 날씨가 서로 맞아떨어지고 메밀과 찰떡 궁합으로 알려진 꿩육수와 가을에 담근 동치미국물이 맛나게 익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냉면은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효과뿐 아니라 엄동에 추위를 녹이는 효능도 있다.

냉면솥이 펄펄 끓어오르도록 잔뜩 지펴놓은 장작불로 손을 댈 수 없이 달아오른 돌구들을 깔고 앉아 얼음이 서걱서걱하게 얹어나오는 시원한 냉면에 빨간 배추김치를 척척 얹어 훌훌 들이마시는 ‘멋’을 평안도사람들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바닥이 뜨거워 엉덩이를 계속 들썩이면서도 어깨는 으슬으슬 한기를 느끼고, 국수를 삶아낸 따끈한 메밀 온수를 훌훌 불어마시며 시린 이빨을 녹이는 광경은 평양냉면만이 지닌 독특한 진풍경이 아닌가 싶다. 냉과 열의 극단적인 혼돈이 추위로 움츠렸던 몸 속의 기운을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때문에 지금부터가 평양냉면의 계절이고 특히 겨울 냉면맛의 극치는 꿩냉면이다. 그래서 45년 내력의 조포수집 꿩냉면은 수십년씩 단골로 찾는 냉면 마니아들이 줄지어 찾아들고 있다.

사진/ 칠순을 바라보는 김옥주씨와 대를 잇는 조성수씨 부부.
춘천시내에서 소양2교를 건너 춘천댐으로 오르는 중간지점인 사농동 KBS송신소 앞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평양냉면(033-254-3778)은 강원도 내 원로 포수인 주인 조용진(71)씨 일가가 3대를 이어오는 평양냉면 전문점이다. 주인의 명성에 따라 ‘조포수집 꿩냉면’으로 통한다. 지금도 겨울철이면 전국의 수렵지를 누비며 직접 잡아온 야생꿩으로 육수를 뽑아 꿩알맹이를 얹어내는 순수한 꿩냉면을 내는 유일한 집이다. 70대 노익장을 자랑하는 조씨는 젊은 포수들을 거느리고 집을 나서면 겨우내 수렵지에 머물며 잡은 꿩을 택배로 보내온다.

이렇게 마련한 꿩을 말끔히 손질해 냉동해놓고 이듬해 3∼4월까지 꿩냉면감으로 사용하는데, 꿩의 가슴살과 뒷다릿살을 말끔히 벗겨내 연한 목뼈와 함께 양념을 해가며 곱게 다져 메추리알만한 크기로 알맹이를 빚는다. 살을 다듬고 난 뼈를 2∼3시간 곤 국물에 알맹이를 삶아내고 한번 더 맛을 돋우면 자연스럽게 꿩육수가 되고, 여기에 잘 익은 동치미국물을 섞어 국수를 말고 꿩알맹이를 얹어내면 이름 그대로 꿩냉면이 된다.

냉면집은 부인 김옥주(68)씨의 몫으로 23살 나던 해 시집와 평북 맹산이 고향인 시어머니 유진실(91) 할머니가 경영하던 냉면집을 물려받아 45년간 이어오고 있다. 시어머니 때부터 따지면 50년이 넘고, 지금은 아들 조성수(45)씨 부부가 3대째 가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꿩냉면 4천원, 꿩알맹이(1접시, 20∼30알) 2만원, 녹두부침(1접시) 5천원.


나도 주방장|꿩알맹이

들어나 봤나 꿩경단!

익살스런 평안도사람들은 ‘냉면육수에 꿩이 발만 담갔다 꺼내도 제맛이 난다’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꿩고기와 메밀, 동치밋국 3가지의 궁합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순메밀로 눌러 다소 거친 국수도 꿩육수에 말아놓으면 전분을 섞은 것처럼 부드럽고 쫀득하게 질감이 살아나 후루룩 마시게 될 만큼 달라진다.

특히 야생꿩의 뼈를 곤 꿩육수는 사육꿩에서 낼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다. 꿩사냥철인 11월부터 12월 말까지 1개월 남짓한 시기가 가장 적기고, 이때 냉동해놓은 꿩으로 3∼4월까지 꿩냉면맛을 즐길 수 있다.

꿩냉면의 상징인 꿩알맹이는 꿩의 앞가슴살과 허벅지살을 중심으로 마늘과 파, 후추, 참기름으로 양념을 해가며 곱게 다져 소금으로 간을 맞춰 동굴동굴하게 빚어 꿩육수에 삶아 건진 것이다. 따로 접시에 담아 양념장에 찍어 안주로 삼으면 꿩경단이 되고, 냉면에 몇알씩 넣고 부순 뒤 국수에 풀면 사리와 함께 씹히며 국수맛을 절묘하게 살려낸다. 여기에 빨간 배추김치라도 한 조각 얹으면 가히 냉면맛의 극치라 할 만하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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