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바람에 노릇하게 익은 장어구이
등록 : 2001-11-21 00:00 수정 :
낙엽이 쏟아지는 호숫가 초겨울 풍광은 실로 계절감의 절정을 이룬 모습이다. 계절은 물길 따라 온다는 옛말을 만추의 호반에서 실감할 수 있다. 팔당호 한가운데 서 있는 감나무집 창가에 비치는 계절감 또한 기막히다. 향미 그윽한 장어구이가 곁들여진 따사로운 분위기는 설명하지 않는 것이 더 실감날 것 같다.
감나무집(031-576-8263)은 다산 정약용의 생가와 묘가 전해오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현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생가와 여유당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되살려져 있다. 감나무집은 기념관 마당을 가로질러 호숫가에 나앉아 있다.
주인 조운봉(59)씨는 지금의 집터에서 6대를 살아온 마을 안 토박이다. 주민들은 조씨의 집이 다산 생가와 가장 가깝게 있는 것으로 보아, 조씨의 선친들은 아마도 다산의 가족들과 샘물을 나눠먹으며 지냈던 이웃사촌간이었을 거라고 한다. 마을에서 태어나 마을 밖을 나가 산 적이 없다는 소박한 인심이 옛 그대로 변한 데가 없다. 70년대 초 팔당댐이 완공되면서 마당 앞까지 물에 잠겼지만, 집을 버리고 떠날 수가 없어 시작한 매운탕과 장어구이가 이제 햇수로 24년째. 그 맛이 서울과 경기 일원에 소문나 외환위기 때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나왔다고 한다.
장어구이는 처음에는 마을에 전해오는 방법대로 참나무숯을 피워놓고 석쇠에 얹어 앞뒤를 뒤집어가며 즉석에서 구워주었다. 장어뼈를 고아 만든 장어장을 여러 차례 발라가며 구우면 쫄깃하게 씹히는 질감과 숯불에서 밴 훈내가 별미로 꼽혔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고객들의 취향이 바뀌어 조금이라도 불에 탄 모습을 꺼려하고, 씹히는 질감이나 훈내조차도 마다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력이 은은한 가스그릴에 서서히 구워 입에 녹듯이 부드럽고 은은하게 감칠맛을 낸 뒤 따끈한 불판에 얹어 손님상에 올린다.
사진/ 음식맛을 책임지고 있는 공영순씨와 장남 조재우씨 부부.
입 안에 녹는 듯한 질감과 함께 장어소스의 향미를 그대로 살려낸 장어장구이가 인기있고 좀더 담백한 소금구이와 고추장구이를 찾는 이들도 있어, 주문을 받을 때 고객의 선택에 따라 때로는 한판에 3가지 구이가 골고루 담겨 나오기도 한다.
가격은 2인분 3마리(1kg)에 3만5천원. 정식 상차림을 차리듯 5∼6가지의 찬이 곁들여지고 따라 내는 장어죽까지 있다. 90년대 초 100년이 넘은 한옥을 손질해 창을 넓히고 쾌적하게 가꿔놓아 팔당호반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과 편안한 분위기도 마을 안에 첫손 꼽힌다. 초겨울 상큼한 강바람과 감미로운 장어구이 맛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가는 방법은 터널로 이어지는 새로난 길을 이용하기보다 팔당대교에서 100m쯤 가다가 오른쪽으로 내려서 팔당댐과 호숫가를 따라 오르는 옛길을 타는 것이 좀더 운치있고 막힘도 덜하다.
나도주방장|메기매운탕
쏘가리여, 메기를 무시말라 감나무집 장어구이 못지않은 별미로 쏘가리매운탕과 메기매운탕을 빼놓을 수 없다. 매운탕은 쏘가리매운탕이 단연 으뜸이지만 북한강과 남한강에서 나는 자연산 쏘가리는 회와 매운탕감으로 인기가 치솟아 가격이 부담스러운 것이 흠이다.
쏘가리매운탕의 명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 탕맛을 즐기기에는 메기만한 생선이 없다.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으로 간을 해 얼큰하게 끓여낸 메기매운탕은 얼얼하면서도 시원하고 깊은 맛을 내 몇해씩 단골로 찾는 고객들이 줄을 잇는다.
알맞은 크기의 메기를 툭툭 토막내 된장국물에 고추장과 태양초 고춧가루를 풀어 한 차례 화끈하게 끓여 나오는 메기매운탕은, 조리 전에 메기를 약수처럼 맑은 물에 담가 흙냄새를 충분히 없애, 아무런 냄새가 없이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큼직큼직하게 뜯어넣은 수제비도 옛 한강매운탕의 조리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단백질의 보고처럼 알려진 메기의 흰살과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맛이 확실하게 입맛을 당겨주는 계절의 진미다. 가격도 1근(2∼3인분)을 기준해 2만5천원. 어린이를 포함한 3∼4인분 가족도 무난한 양이어서 큰 부담없이 별미나들이를 즐겨볼 만하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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