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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쳐놓으면 딴 남자에게 날아가겠지… 다중이에게 필요한 건 조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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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8 15:16 수정 : 2015-01-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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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놓으면 딴 남자에게 날아가겠지…

먼저 <킬미, 힐미> 환자. 한 사람 안에 7개 인격이 들어간 해리성 인격장애라니. 이거야, 10명의 인격이 한 호텔로 들어가 서로 죽이려 난리를 치던 영화 <아이덴티티>가 떠오르네. 해결만 할 수 있다면 의학사에 길이 남겠지만, 너무 위험성이 높고 과연 해결 가능한지조차 모르겠다. 다음으로 <하이드 지킬, 나> 환자. 2개 정도의 인격이라면 그래도 다룰 만한데, 이건 나쁜 남자와 착한 남자의 매력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들의 판타지 아닌가? 현빈의 얼굴을 한 두 남자와 불륜 아닌 불륜을 즐길 수 있으니 적당히 놔두는 건 어떨지?

마지막으로 대인기피성 안면홍조증 환자인 <하트투하트>(사진). 나의 선택은 이쪽이 아닐까 싶다. 흑심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오해는 접어두시라. 그냥 여성 환자가 아니다. 빨간 볼이 너무 잘 어울리는, 현재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는 정점이라 할 만한 최강희다. 최강희에겐 이런 종류의 역할이 “또야?” 싶기도 하다. 하지만 첫 회부터 헬멧 속에 얼굴을 감추고 풋풋한 사랑의 기운을 풍기며 좌충우돌하는 매력을 뿜어낸다. 요즘 여자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건어물녀가 된다는데, 이렇게 파릇한 연애 감성을 꼭꼭 다져둔 여성을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 게다가 대인기피에서 서서히 벗어나 맨얼굴 맨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게 만드는 정도는 현실적인 치료도 가능하지 않나? 의사로서 또 남자로서 충분히 기대감을 가져볼 만하고, 그렇게만 되면 일거양득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부분의 경우 잘 고쳐놓으면 딴 남자에게로 포르륵 날아가긴 한다. 여성들이 더 잘 알 거다. 전 남친 자식, 사람 만들어놨더니….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TVN 제공

다중이에게 필요한 건 조련사

로맨틱코미디의 새로운 금맥 다중인격 소재는 치유보다는 남주인공의 다채로운 매력으로 여심을 사로잡으려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수목극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킬미, 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의 성격은 정신의학을 진지하게 다룬 <괜찮아, 사랑이야>가 아니라 <별에서 온 그대>에 더 가깝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도민준(김수현)이 이웃집 남자와 먼 은하계의 외계인이라는 이중 신분을 오가며 여러 얼굴을 보여준 이후, 로맨틱코미디의 남주인공들은 더 다양한 매력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킬미, 힐미>에서 여주인공 오리진(황정음)을 사이에 두고 주인 격인 젠틀남 차도현(지성)과 제2인격 짐승남 신세기(지성)가 대결을 펼치고, <하이드 지킬, 나>에서 까칠남 구서진(현빈)이 또 다른 인격인 자상남 로빈(현빈)과 여주인공 장하나(한지민)를 놓고 삼각관계를 펼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남성에게서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원하는 여성 판타지가 지금의 다중인격 로맨스 유행을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다중인격은 치료 대상이 아니라 단지 길들임의 대상인 것이다. 여러 얼굴이라 사랑스럽지만 언제 변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함을 원하는 대로 길들일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황홀한 판타지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다중인격 드라마에 필요한 건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조련사다. <하이드 지킬, 나>의 여주인공이 조련 기술을 지닌 서커스 단장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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