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개의 계절, 겨울이 왔네
등록 : 2001-11-13 00:00 수정 :
사진/ 고춧물이 빨갛게 우러난 안성또순이집 생태찌개.
입동(立冬)이 지나 절기로 보면 본격적인 겨울철이다. 우리 입맛은 계절에 따라 먹고 싶어지는 것들이 따로 있다. 이를테면 과즙이 철철 흘러내리도록 농익은 복숭아라든가 말랑하게 익어 감미롭게 녹는 홍시 같은 것들이다.
요즘처럼 쌀쌀하게 몸이 움츠러들 때 점심에 생태찌개집을 가자고 권한다면 따라나서지 않을 장년층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설혹 별 생각없이 따라나섰더라도 톡 쏘듯 개운한 생태찌개 국물을 몇술 떠먹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원한 맛에 빠져들게 되고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생태는 신선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강하게 당기는 담백한 맛이 좋은 겨울철 진미다. 살이 무르고 지방분이 적어 비린 맛이 전혀 없다. 외국인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생선이라지만 일찌감치 찌개문화를 일궈낸 한국인들에게는 더없는 먹을거리로 뿌리내려오고 있다. 불행하게도 청소년들과 젊은 세대들 사이엔 그 진수를 미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생태는 신선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제맛나는 것은 역시 동해안의 속초와 거진항에서 잡는 즉시 서울로 옮겨온 것이고, 그 다음이 북한이나 일본어선들이 잡아 부산항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산은 도착하는 데 대략 3일, 북한산은 8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일본산은 그런 대로 생태찌개감이 되지만 북한산은 신선도가 떨어져 일반 매운탕감으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사진/ 30년 손맛을 자랑하는 사장 최점례(64)씨와 딸 전선영씨.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서울의 강남과 강북에 점심시간이면 손님들로 북적대는 전문 생태찌개집들이 한두곳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70년대 초 정동 문화방송 뒷길에서 장터국수집으로 출발한 안성또순이집(02-733-5830)은 그 내력이 30년을 헤아린다. 당시에는 서민들의 겨울철 찬거리였던 생태로 찌개를 끓여 계절메뉴로 냈으나 고객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지금은 생태찌개 단 한 가지만을 취급하는 별미집이 됐다.
언제나 제철 생태인 것은 물론이고 생태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해 육수를 따로 뽑지 않고 제 국물을 우려내 양념맛과 조화를 이뤄내는 개운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보들보들한 하얀 살점이 어우러져 담백한 맛이 실로 절묘하다. 또 유별나게 고소한 간과 아작아작 씹히는 알 등 부산물도 조금씩이나마 골고루 넣어준다. 싱싱한 무와 대파, 두부를 숭숭 썰어 깔고 신선한 생태토막에 다진마늘과 고춧가루를 얹어 즉석에서 화끈하게 끓여주는 단순한 조리과정도 입맛을 돋운다.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2∼3인분 1냄비에 3만원. 흑미를 섞어 반지르르하게 뜸을 들인 밥은 별도로 1천원을 더 받는다. 하지만 밥그릇에 부어주는 누룽지숭늉까지 다 마시고 나면 가격을 따지는 손님이 없다는 것이 주인의 자랑이다.
나도 주방장|동그랑땡
없으면 서운한 감초 반찬 안성또순이집의 또다른 별미로 꽃게탕과 꽃게장이 유명하다. 80년대 중반까지도 봄에는 꽃게탕과 게장이 생태찌개보다 인기를 누렸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9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꽃게는 게장만 담가 찾는 고객에게만 내고 있다. 생태찌개 4∼5인분에 게장 1접시를 곁들이면 자연스럽게 밥 한 그릇을 더 추가하게 된다.
그러나 꽃게값이 워낙 비싸 손님들이 부담스러워해 대신 내놓은 것이 또순이집 동그랑땡이다. 찌개에 곁들이는 별미 겸 저녁시간 안줏감으로 손색이 없다.
가정에서도 손쉽게 만들어 찬이나 안줏감으로 이용할 만하다. 돼지목등심살의 지방을 말끔히 걷어낸 뒤 곱게 다져 마늘, 양파, 당근, 생강 등 야채다진것과 두부를 으깨 물기를 꼭 짠 것을 함께 섞어 만두 속처럼 주물러 고루 섞어 알맞은 크기로 빚어 놓는다. 상에 낼 때, 밀가루로 옷을 한벌 입히고 풀어놓은 계란에 담가내 프라이팬에 지진다.
신선한 돼지목살에 싱싱한 야채와 두부가 들어가 맛이 한결 부드럽고 영양분이 골고루 갖춰져 어린이들의 간식거리로도 훌륭하다. 소금을 살짝 뿌려놓으면 소스가 따로 필요없고, 맥주나 포도주와 곁들여도 손색이 없는 안줏감이 된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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