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머니 밥맛 기억하세요?
등록 : 2001-10-31 00:00 수정 :
쌀의 품질이 변해가고 있다. 밥맛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더욱 기막힌 것은 젊은 주부들과 청소년들이 우리의 고유한 밥맛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으로 기억되는 ‘어머니의 밥맛’에 대한 향수를 요즘 세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유년 시절 밥그릇 하나만 들고도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별다른 간식이 필요없이 즐겼던 예전 사람들의 밥맛은 몸에 배도록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장맛 또한 그렇다. 정성스럽게 담가 알뜰하게 가꿔낸 고유한 장맛이 온갖 찬들을 빚어낸다. 이렇게 밥과 장이 어우러진 한 가정의 고유한 음식맛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었고, 인간관계를 엮어주는 기본틀이기도 했다. 그러나 면면히 이어져온 우리 음식의 정겨움이 변질돼가는 밥맛과 장맛으로 인해 무너져내리고 있다. 이제 쌀소비마저 걱정할 수준으로 크게 줄고 있다고 한다.
사진/ 한국전통장을 만들어 우수 벤처기업인으로 인증받은 서분례씨.
중부고속도로 일죽나들목에서 2km 남짓에 자리잡고 있는 솔리(031-673-3171)는 우리 고유의 장맛을 바탕으로 한 이색 한식집이다. 문을 열기 전, 전국의 내력있는 종갓집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종부(종갓집 맏며느리)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이를 바탕으로 예전에 어머니가 지어준 밥맛과 장맛을 살려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쌀은 안성과 이천지역에서 난 것 중 예전 쌀과 가장 흡사한 것을 골라쓰고, 콩도 이 지역 것을 가마당 1만원씩 더 주고 사들여 모자란 적이 없다고 한다. 사용하는 간은 천일염을 2∼3년간 저장해 간수를 추출한 뒤 물에 한번 더 헹궈 사용해 소금의 해독을 예방해주고 있다.
하나하나의 과정에 가족들의 건강을 보살피듯 정성을 담아낸다는 것이 주인 서분례(54)씨의 경영방침이고 자부심이다. 흑미를 섞어 뜸을 폭 들인 밥과 된장찌개에 9가지 장아찌를 옹기그릇에 담아낸 상이 1인분 5천원으로 크게 가격부담이 없다. 씹을수록 달착지근한 밥맛이 옛날 밥맛에 가깝고, 짭짤하면서도 입 안이 개운한 장아찌와 깔끔한 된장찌개맛이 먹고 난 뒤에도 속을 가볍고 편안하게 해준다.
6∼7년 전부터 가꾸어왔다는 솔숲이 그윽하게 드리워진 정원은 연산홍을 비롯한 각종 화목들이 어우러져 사계절 공원 같은 분위기다. 배와 매실밭이 있고 배추도 1년에 2만 포기를 직접 가꾸어 가을에 김장을 담가 이듬해 새 김치가 날 때까지 손님상에 올린다고 한다.
가까운 거리의 칠장사 단풍이 절정을 이뤘고 한택식물원의 가을꽃이 한창이어서 이런저런 볼거리들을 미리 챙기고 나서면 멋진 주말나들이를 겸할 수 있다.
나도 주방장|장과 장아찌 장아찌와 된장이 익는 농원 솔리의 음식맛은 서씨가 경영하는 서일농원이 뒷받침한다. 전통장을 만들어내는 ‘장농원’이다. 햇볕이 가리는 데가 없는 고즈넉한 야산자락에 2천여개의 장독을 3개의 무리로 나눠 담장을 둘러놓았다. 1년에 1칸씩 장을 담가 3년 주기로 낸다고 한다.
가장 알맞게 익어 제맛이 나는 된장과 고추장은 유난히 강한 장냄새가 톡 쏘듯 신선하게 입맛을 자극한다. 된장과 고추장, 다리지 않은 진간장, 쌈장 등을 옹기그릇에 담아 판매하고, 된장과 고추장에 박아 알맞게 삭힌 더덕장아찌, 가죽나무순장아찌, 달래장아찌, 미역장아찌, 무말랭이장아찌, 무장아찌, 파래장아찌, 깻잎장아찌, 김장아찌 등 9가지의 장아찌를 생산한다.
가격은 시중가에 2∼3배에 해당하는 고가품이다. 제대로 만들어 제값에 공급한다는 것이 서씨의 주장인데, 매해 생산량을 늘려야 할 정도로 고객이 늘고 있고 경기도로부터 지역명품으로 인증받기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송리는 서일농원의 시식코너인 셈이다. 메뉴는 된장찌개백반 1가지뿐이지만 간이 푹 밴 짭짤한 장아찌들을 한 가지씩 차례로 맛보는 사이 밥 한릇을 금세 비울 수 있다. 우리 고유의 밑반찬인 장아찌맛이 어떤 것인지를 가늠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