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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20년의 손맛이 녹아든 별미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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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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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생굴과 양송이가 어우러진 버섯굴죽.

언제부터인가 죽이 밥보다 못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것은 아마도 궁핍했던 시절 구황죽으로 끼니를 때우던 아픈 기억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세대에게는 이같은 경험이 없고 지난 세대의 생각도 많이 변해가고 있어, 이제라도 죽이 다시금 좋은 음식으로 제자리를 찾게 됐으면 한다.

죽은 우리 음식문화에서 밥보다 훨씬 오랜 기원을 갖고 있다. 또 옛 문헌에도 죽의 이름이 무려 170여 가지를 헤이릴 만큼 폭넓게 즐겼던 먹을거리다. 비록 구황죽에 밀려 인식이 바뀌기는 했지만, 절기에 따라 맛보게 되는 동지팥죽을 비롯해 전복죽, 잣죽, 호박죽, 어죽 등 민속죽과 각종 보양죽은 누구에게나 입맛 당기는 진미가 아닐 수 없다.

여의도 중심가에서 20년을 이어온 죽집 대여(02-783-6023)는 민속죽이 아닌 별미죽과 건강죽이 주를 이룬다. 소재에 따라 야채죽, 버섯굴죽, 소두부죽, 전복죽, 새우죽, 닭죽, 잣죽, 호도죽, 인삼죽 등 10여 가지에 이르고 하나같이 별미다.

사진/ 주인 안정순씨.
이곳 내력은 주인 안정순(51)씨의 남다른 정성에서 비롯된다. 평소 죽을 좋아했던 안씨는 죽집을 열기 전부터 계절에 따라 이런저런 죽을 쑤어 가족들과 함께 즐겼고, 가족들은 물론 가까운 이웃들도 안씨의 죽맛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절기마다 신선한 재료들을 선별해 새로운 맛의 별미죽을 만들어내는 것이 즐겁고, 고객이 늘 새롭게 죽맛을 즐기는 모습에서 크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죽맛은 첫째 까다로운 재료선택과 정성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죽의 재료는 수없이 많지만 제철에 나는 가장 신선한 것이 좋고, 재료마다 지니고 있는 특성을 최대한 살려 가장 맛있는 죽을 쑤어 내려는 주인의 정성과 오랜 경험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의 바탕이 되는 쌀과 곡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씹을수록 고소하고 감미로운 토종쌀을 골라오고, 사용하는 죽물과 조리방법도 죽마다 다르다. 맹물을 사용할 때는 물을 팔팔 끓여 물맛을 낸 뒤 재료를 안치는가 하면 해물과 야채를 삶아 건진 해물육수와 쇠고기 양지와 사골을 삶아낸 쇠고기육수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죽을 젓는 방법도 죽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60석 남짓한 작은 죽집이지만 주방에는 하얀 위생복을 단정하게 갖춘 5명의 찬모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죽은 미리 쑤어놓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음식에 비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언제나 3∼4개 테이블에 한 사람꼴로 찬모들이 열심히 손놀림을 해야 고객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유난히 깔끔한 실내 분위기도 20년 전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열 때부터 주변에서 모두들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크게 손댄 곳 없이 옛 모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지만 지금도 세련되고 정갈한 분위기로 여의도 내 첫손 꼽히고 있다.이미 20년을 사용한 나무 테이블이 새것처럼 반짝하게 윤이 나고 양념그릇 하나도 흐트러진 데를 찾아볼 수 없다.

나도 주방장|버섯굴죽

죽은 한 방향으로 저어라

사진/ 대여의 죽찬.
입맛없을 때 맛있는 죽 한 그릇은 보약과 같다. 가을철 대여의 가장 인기있는 죽은 버섯굴죽이다. 햅쌀과 제철을 맞은 싱싱한 굴, 향긋한 버섯이 어우러지는 맛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죽을 쑤는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죽에 넣을 쌀은 알맞게 불려놓아야 한다. 죽을 좀더 맛있게 쑤려면 죽물도 미리 뽑아놓는 것이 좋다. 멸치나 바지락조개 몇개를 다시마와 함께 넣고 푹 끓여 건더기를 건져내고 간장으로 약간 간을 한다. 이때 간장을 넣는 것은 색깔을 내는 데도 효과적이다. 육수에 죽쌀을 안치고 죽을 쑤면서 죽이 거의 익었다 싶을 때, 미리 데쳐놓았던 야채류를 송송 썰어 넣고, 싱싱한 생굴과 버섯을 얹어 굴과 버섯이 알맞게 익었을 때 불을 끄고 약간 뜸을 들인다. 죽을 저을 때는 한쪽 방향으로 일정하게 젓는 것이 좋다. 야채와 굴, 버섯에서 물이 조금 배어나오기 때문에 약간 묽어질 것을 예상해 처음 죽은 다소 된 듯하게 쒀야 한다. 죽을 그릇에 떠내고 계란 노른자와 볶은 깨를 약간 얹으면 더욱 별미죽이 된다.

죽 못지않게 따라 내는 찬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많은 반찬보다는 죽 자체의 맛을 해치지 않은 정도의 깔끔한 밑반찬이면 된다. 대여의 죽찬은 담백한 물김치와 상큼하게 무친 젓갈류 한 가지에다 배추김치와 우엉조림, 콩나물무침을 기본찬그릇에 담아내 죽맛을 한결 깔끔하게 살려낸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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