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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가을의 스산함을 달래는 훈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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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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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흩뿌리며 마음이 스산할 때, 소박하게 차려낸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은 움츠러든 심신을 훈훈하게 해주는 묘약이다. 칼국수는 원래 한여름 계절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 같은 환절기에 그 진가를 뚜렷하게 안겨준다.

또한 칼국수는 조리법이 간편한 대신 만드는 솜씨와 정성에 따라 맛과 격식이 크게 달라진다. 지역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의 맛을 지녀 특성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맛이 한결같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칼국수집 한두곳을 기억해두면 요즘처럼 날씨변화가 심할 때 입맛을 잃지 않고 지낼 수 있다.

고향집(02-543-6363)은 강남지역에서 칼국수 한 그릇이 생각날 때 믿고 찾아도 좋은 집이다. 관세청 건너편 음식골목에서 개업 16년째를 맞고 있다. 50대 중반인 여주인의 음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고객도 대부분 5∼10년 넘은 단골이다.

주메뉴는 물론 칼국수인데 고향집은 굳이 ‘우리밀손칼국수’라 부른다. 칼국수 고유의 구수한 맛을 내기 위해 우리밀가루를 바탕으로 중력분밀가루와 날콩가루를 20%쯤 더 섞어 반죽하기 때문이다.

가루를 손반죽해 종잇장처럼 얇게 밀어 3∼4겹으로 접어 종이에 싸놓았다가 손님이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즉석에서 썰어 삶아낸다. 국숫발이 한결 매끄럽고 틀에 누른 것처럼 곱다. 육수는 양지머리살만을 삶아 국물이 알맞게 우러났을 때 고기를 건져내, 국물은 육수로 사용하고 양지살은 다시 곱게 양념해서 국수에 얹는다. 이때 국수사리를 육수에 바로 삶지 않는 게 특징이다. 국수를 따로 삶아 그릇에 담고 설설 끓는 육수국물을 부은 뒤, 양념을 얹어낸다. 손은 한번 더 가지만, 국물이 맑고 국수가 뿌옇게 풀어져 걸죽하거나 탁한 느낌이 전혀 없기 때문에 국수와 육수맛을 제대로 살려낸다. 찬은 배추김치를 기본으로 철에 따라 열무김치와 파김치를 곁들인다. 고객의 취향에 따라 콩자반이나 장아찌 등 밑반찬을 하나 더 마련하는데, 이 맛이 그리워 발걸음을 자주 하게 된다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칼국수 못지않게 인기있는 안줏감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제육보쌈과 두부탕, 북어구이와 녹두부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제육은 삼겹살이나 목등심 대신 값이 다소 비싼 앞다리사태살을 써 비계가 없고 살이 한결 더 부드럽다. 그날 잡은 신선한 생고기를 들여와서, 웬만한 보쌈전문집 못지않다. 칼국수 5천원, 제육보쌈 1만3천원.


나도 주방장|칼국수 밑반찬

칼국수는 반찬맛

대개 칼국수 하면 배추김치나 겉절이를 떠올리지만, 고향집 음식맛은 담백하고 깔끔한 칼국수와 밑반찬들이 잘 어우러지는 특색이 있다. 밑반찬들은 하나같이 주인의 손이 다른 집보다 두세번은 더 간 것들로 칼국수맛을 한 차원 높여준다.

다시마를 멸치처럼 가늘게 썰어넣고 달착지근하게 조림한 콩자반은 기름이 반지르 돌면서 한알씩 집어먹는 맛이 기막히다. 푹 삭힌 뒤 양념장에 부드럽게 쪄낸 깻잎장아찌 역시 국수에 한잎씩 얹어 먹으면 깔끔한 맛이 매콤한 배추김치 이상으로 국수맛을 잘 살려낸다. 또 표고버섯과 쇠고기를 다져넣고 다진 마늘을 넉넉히 넣은 고추장볶음과 참기름을 넣고 상큼하게 무친 오징어젓갈, 창난젓 등도 입맛을 자극한다. 이것들은 칼국수를 한결 더 부드럽고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칼국수 한 그릇 먹는데 매콤한 김치 하나면 족하지, 밑반찬들이 뭐 필요하겠나 싶겠지만 막상 국수에 한점씩 얹어 짭짤하게 맛을 내 먹는 기분은 짜릿할 정도다. 밑반찬맛에 국수맛이 얹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70석 규모의 홀과 한실이 구별돼 있지만 몇명이 둘러앉아 술이라도 한잔 곁들이려면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불편이 없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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