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가시를 앞에 두고 드는 걱정
갈치 조림 반, 구이 반
등록 : 2013-12-03 14:36 수정 : 2013-12-06 13:39
가장 적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고도, 가장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상차림은 뭘까? 경험으로부터 말하자면 샤부샤부다. 여러 가지 채소를 씻고, 버섯 몇 종류를 손질해둔다. 고기와 각종 해산물은 그대로 쓰면 된다. 다만 가다랑어포 육수를 직접 만드는 정도의 수고는 감수할 가치가 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농축액으로 육수를 만들면 끓일수록 짠맛이 강해지는 반면, 육수를 만들어 쓰면 아무리 끓여도 짜지 않고 오히려 재료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기 때문이다. 풍성한 재료를 한 상에 차려내니 시각적인 효과도 있다. 가끔 손님상을 차릴 때, 샤부샤부는 늘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나저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는 가다랑어포에도 손이 잘 안 간다. 국산 제품도 있다는데,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기사가 있다. 이런 젠장. 냉동실 안에 잠들어 있는 일본산 가다랑어포 한 봉지는 후쿠시마 사태 이전에 구입한 것이었다. 최소한 2년6개월은 지났다는 뜻이다. 방사능의 위험에선 자유롭지만, 일단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겠지. 갑자기 조금 우울해졌다.
어쨌든 샤부샤부만큼 쉽고도 효과적인 메뉴가 또 있다. 갈치조림이다. 생선으로 만드는 음식은 귀찮거나 제대로 맛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마트에서 싱싱해 보이는 갈치 두 마리를 샀다. 다만 비싼 게 흠이다. 별로 크지도 않은 갈치가 한 마리에 1만원이나 했다. 두툼한 진짜 제주도 갈치는 훨씬 더 비싸겠지. 참고로 국산 갈치는 중국산이나 일본산에 비해 꼬리가 아주 길고 가늘다고 한다. 마트에서 사온 갈치의 꼬리도 길고 가늘었다. 뭐, 믿어보는 수밖에.
‘프라이드 반·양념 반’의 원칙에 입각해 한 마리로는 간간한 조림을 만들고, 나머지 한 마리는 팬에 굽기로 했다.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뽑는 동안 무와 감자 양파를 썰어두고 간장과 다진 마늘, 고춧가루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냄비 바닥에 무와 감자를 깔고 손질된 갈치를 올렸다. 단맛이 너무 강해지지 않도록 양파는 조금만 넣었다. 양념장을 적당히 덜어 육수를 붓고 자박하게 조리면 끝이다. 청·홍 고추를 마지막에 더한 뒤 조금만 더 끓여냈다.
미리 칼집을 내고 소금과 후추로 밑간한 다른 한 마리는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구웠다. 새로 지은 따뜻한 쌀밥에 갈치조림과 구이, 장모님표 파김치로 저녁상을 차렸다. 30분밖에 안 걸렸지만, 풍성한 밥상이었다.
모라모락 김이 오르는 밥 한 숟가락 위에 잘 익은 갈치구이의 살을 발라 얹었다. 아내의 눈망울이 반짝거렸다. “이것이 아주 그냥 밥도둑이로구나!”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갈치조림을 밥에 슥슥 비벼먹었다. 꿀맛이었다. 어느새 상에는 뼈와 가시밖에 남지 않았다. 맛있게 먹고 난 뒤 또다시 조금 우울해졌다. 우리는 언제쯤 방사능 걱정 없이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까? 우리 다음 세대는 편한 마음으로 이런 맛을 즐길 수 있을까? 이런 젠장.
송호균 <한겨레> 사회부 기자 ukno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