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가지 해물이 부르는 맛의 합창
등록 : 2001-09-26 00:00 수정 :
이제 콜레라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제철을 맞은 횟감들이 줄줄이 선보이기 시작해 발길을 해산물쪽으로 되돌려도 좋을 것 같다. 아직 마음이 안 놓인다면, 콜레라 덕택에 오히려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을 찾으면 된다. 다름 아닌 해물탕집이다. 고추가루와 마늘을 듬뿍 넣고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이는데 무슨 콜레라 걱정을 하겠는가. 게다가 해물값이 누그러져 평소보다 내용이 더 푸짐해졌다고 한다.
제일해물탕(02-379-1774)은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집이다. 1996년 이곳에 해물탕집을 연 명삼례(78) 할머니는 서울의 남대문시장과 노량진수산시장 등, 수산물시장을 오간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는 수산시장의 원조할머니다. 그는 두곳 수산물시장에서 해물탕에 들어가는 어패류를 50년 넘게 다루며 서울과 경인지역 해물탕집과 일식집들을 뒷받침했다. 그래서 해물이라면 눈을 감고도 신선도는 물론 어느 해안에서 올라온 것인지까지도 척척 가려내 맛이 가장 뛰어난 것들을 선별해 들여놓는다.
사진/ 해물의 대모나 다름없다는 명삼례 할머니와 며느리 장선애씨.
경영을 맡고 있는 며느리 장선애(44)씨 역시 시어머니와 함게 10년 넘게 어패류를 만져와서, 해물탕에 관한 한 누구든 따를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싱싱한 제철 어패류들을 18~20가지 이상이나 챙겨 얹어 "해물탕맛은 해물의 가짓수로 말해준다"는 말을 실감하게한다. 순수한 조개만을 삶아 우려낸 탕국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담백하고 시원하다. 여기에 미나리와 콩나물, 대파 등 야채류를 넉넉히 얹고 고추장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양념을 풀어 즉석에서 끓여준다. 한마디로 신선하면서 깊은 맛이다.
제일해물탕은 홍제3동 서울여자간호대학 입구 주택가에 있어 처음 찾아가기에는 다소 불편하다. 명씨 할머니는 음식 먹으러 왔다가 잘가 없어 그냥 돌아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넓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명씨 할머니는 "음식 맛있으면 됐지 자리는 상관할 게 없다"고 말하곤 한다.
넉넉한 마음씨로 2~3인분이나 3~4인분을 크게 차이없이 담아낸다는 해물탕은 2~3인분이 2만5천원, 3~4인분이 3만1천원. 그 밖에 점심에 직장인들과 인근 젊은 주부들을 위해 시작했다는 1그릇 4천원인 해물칼국수도 국수전골을 방불케 할 만큼 내용이 푸짐하고 진한 맛이 난다.
나도 주방장/ 해물칼국수 해산물로만 우려낸 국물 해물칼국수는 시골뼈나 양지살 삶은 국물을 넣지 않고 해산물을 주재료로 해 맛이 한결 담백하고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재일해물탕의 육수는 제철 대합이나 바지락을 삶아 소금간을 한다. 조갯국물에 국수를 삶다가 국수가 한바탕 끓고나면 다시 홍합과 바지락, 생새우 몇 마리를 얹어 국물이 더욱 진하다.
걸쭉한 정도로 짙은 국물맛은 물론 건져먹는 조개맛도 좋다. 큼직한 그릇에 인원수대로 담아내 먹을 만큼씩 떠서 먹도록 하는데, 우선 푸짐한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홍합과 조개, 새우, 애호박 등이 어우러져 마치 국수전골을 방불케 한다. 홍합과 조개를 건져먹는 맛에 동행한 어린이들이나 젊은 여성고객이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집에서 해물칼국수를 끓일 때는 굳이 조개를 여러 가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제철에 나는 대합이나 바지락, 중새우 2~3마리면 족하다. 팔팔 끓는 물에 조개와 새우를 넣고 삶다가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고 조개가 알맞게 익었을 때 조개를 건져놓는다. 우려낸 국물에 국수를 넣어 삶다가 알맞게 익어갈 때 조개를 다시 얹으면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좀더 간편하게 해물칼국수를 즐길 수 있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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