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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메밀꽃향에 취해, 메밀막걸리에 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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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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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메밀묵무침과 곁들인 메밀막걸리. 서로 어우러지는 맛이 일품이다.
여름의 잔영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심은 한낮 더위가 여전하지만, 밖으로 잠시만 벗어나면 상쾌한 들바람이 완연한 가을날씨다. 햇볕은 따갑지만 싱싱한 들바람이 몸을 개운하게 감싸주고, 유화처럼 짙은 색색의 가을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어 주말 가족나들이로는 지금이 1년 중 가장 알맞은 절기가 아닌가 싶다.

이맘때 가산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강원도 봉평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한창 피어난 메밀꽃이 절정을 이루면서 이를 감상하러 찾아드는 발길이 줄을 잇는다. 소금을 뿌린 듯 하얗다던 메밀꽃은 역시 소설의 주무대였던 물레방앗간과 가산의 생가 주변이 압권이다.

당시 면장을 지냈다는 가산의 부친은, 재능이 남다른 6살된 아들의 교육을 위해 일찌감치 살던 집을 이웃에 넘겨주고 도시(춘천)로 옮겨갔는데, 지금의 주인이 그 후손들이다. 이미 50대 중반을 넘어선 집주인 홍종율(56)씨는 옛집을 이어받아 4대째, 햇수로 86년 동안 살고 있다. 선친들이 이웃의 정을 잊지 않고, 내 집처럼 소중하게 가꾸어 지붕만 함석으로 바꿨을 뿐, 골격은 옛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또 가산의 옛 자취를 찾아오는 외지 손님들을 항상 친절하게 맞아주며 그들이 남겨놓은 방명록만도 수십권에 이른다고 한다.

사진/ 이효석생가의 김금자씨와 며느리 고순원씨.
몇해 전부터 찾는 이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고, 먼 곳 손님들의 요청으로 선보였던 메밀 먹을거리들이 소문나 집 옆 빈터에 ‘이효석생가’라는 깔끔한 통나무집 식당까지 마련했다. 음식내용은 유일한 이웃이었던 가산의 가족들과 시도때도 없이 만들어 나눠먹었다는 메밀전과 메밀묵, 메밀막국수, 메밀막걸리 등이다. 직접 농사지은 메밀로 만든 메밀요리들은 옛맛 그대로이며 전혀 공해와 접촉이 없는 순수한 산골음식이다. 때문에 소박하고 가식없는 풋풋한 정이 묻어 있다.

메밀냄새가 은은하게 배어나는 고소한 메밀묵은 배추김치를 썰어넣고 무치거나 그냥 송송 썰어 양념장과 함께 내기도 하는데, 입에 착착 붙는 메밀막걸리와 함께 곁들여놓으면 한마디로 금상첨화다. 그 맛은 주변에 온통 가득 피어난 메밀꽃 향기와 어우러진다. 메밀가루를 풀어 종잇장처럼 얇게 펴고 배추속잎을 얹어 부쳐내는 메밀전도 부드럽고 담백해서 처음 먹어본다는 어린아이들까지도 자리를 뜰 생각을 않는다.

메밀묵이나 메밀전으로 메밀막걸리를 한잔 시원하게 걸친 뒤, 즉석에서 눌러내는 담백한 막국수로 마무리하는 별미식은 이효석생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각별한 맛이다. 막국수 4천원, 메밀묵(1접시) 6천원, 메밀전(1접시) 5천원, 메밀막걸리(1되) 6천원.


나도 주방장/ 메밀막국수

가을이 담긴 갈색의 구수한 면발

강원도 산간에서 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막국수다. 메밀을 속껍질까지 갈아 반죽을 해놓으면 갈색 빛깔이 난다. 냉면사리보다 구수한 맛이 앞서고 메밀이 지니고 있는 각종 영양소들이 그대로 들어 있다.

이효석생가의 막국수는 직접 농사지어놓은 메밀이 넉넉한 때문인지 속껍질을 대부분 벗겨낸 것이어서 냉면사리에 가까울 정도로 국숫발이 부드럽고, 전분이나 다른 가루를 섞지 않아 메밀맛이 한결 더 난다.

육수도 주인이 직접 도시에 나가 이름난 냉면집의 육수 뽑는 법을 익혀온 것이다. 한우 양지살 삶은 국물에 열무동치미국물을 섞었는데, 담백한 맛이 강원도 산골 막국수로는 매우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누구든 거부감 없이 좋아하고 뒷맛 역시 깔끔하다. 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메밀음식의 여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이효석생가에서는 만든 음식말고도 봉평면에 소재한 메밀가공업소에서 가공해온 메밀가루들을 여러 가지로 구별해 판매한다. 메밀수제비와 칼국수가루, 메밀부침가루 등을 종류별로 마련해놓고, 메밀쌀을 볶아 만든 메밀차도 있다. 알맞은 것을 구해다 가족들과 함께 메밀전이나 메밀수제비를 만들어 별미로 즐기면 강원도 산간의 정취를 한번 더 되새겨볼 수 있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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