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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춘향이의 고장엔 추어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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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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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남원추어탕의 진수를 그대로 담아낸 춘향골 할매추어탕.
남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남원추어탕이다. 서울은 물론 전국 추어탕집들이 옥호에 ‘남원’이란 지명을 얹어놓아야 고객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할 정도로 남원추어탕의 위세가 대단하다. 섬진강 맑은 물줄기가 흐르는 논과 저수지에서 자란 기름진 미꾸라지, 지리산 자락 고랭지에서 걷어낸 무시래기, 남원·임실지역의 토종콩으로 담근 된장이 어우러지는 맛은 남원땅이 아니고는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전북의 음식명소인 전주 사람들조차도 추어탕 생각이 나면 남원행 버스터미널로 발길을 돌려, 전주의 내력있는 추어탕집들이 빛을 못본다고 할 정도다.

그토록 유명한 남원추어탕의 원조집으로 40년 내력을 헤아리는 남원새집이 꼽히고, 일성식당도 음식맛으로 새집과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다. 두집 모두 음식관리가 철저해 음식의 노하우를 밖으로 흘리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어느 집이든 흔한 체인점 한곳 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용인시 구성지구에 일성식당 추어탕맛을 그대로 선보이는 곳이 있다. 주인 오판례(64)씨는 일성식당이 한참 명성을 날리던 70년대 말 일성식당의 주방을 맡아 7년여간 이끌어오면서 일성식당을 일궈낸 한봉림(65)씨의 추어탕솜씨를 고스란히 전수받았다. 워낙에 음식솜씨를 타고난 한씨와 오씨 두 사람이 호흡을 함께할 무렵, “남원사람은 일성식당으로 가고 서울사람들은 새집을 찾는다”고 할 정도로 명성을 날렸고 “음식은 정직해야 쓴다”는 두 할머니의 곧은 마음씨와 정성이 추어탕맛의 극치를 이뤄냈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사진/ "음식은 정직해야 쓴다"고 말하는 오판례씨.
오씨가 서울 근교에 처음 문을 연 것은 95년 서울 양재동의 춘향골할매추어탕집이었고, 2년여간 경험을 쌓은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겨앉아 5년째를 맞고 있다. 옥호는 여전히 춘향골할매추어탕(031-284-0228)으로 며느리와 함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음식맛을 챙기고 있는 오씨의 ‘극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데가 없다. 남원에서 올려오는 미꾸라지와 무시래기에 임실 토종콩으로 담근 집된장으로 간을 한 추어탕맛은 한번 맛을 보면 단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남원 일성식당을 기억하고 있는 호남 출신의 옛 단골들이 서울·분당·수원·용인 등지에서 불편을 마다않고 찾아와 잊고 지내던 고향맛을 한껏 즐기고 간다고 한다.

산 미꾸라지를 푹 삶아 채에 거르고 들깨를 걸쭉하게 갈아 푼 뒤, 푹 삶아 우려낸 무시래기를 썰어넣고 된장으로 간을 맞춰가며 마늘과 고추, 생강으로 양념해 시래기가 흐물흐물하도록 푹 끓인다. 조미료가 일체 들어가지 않아 구수하고 담백하면서 아무런 부담없이 입에 붙는 맛이 가히 남원추어탕의 진수를 한치도 어긋남 없이 느끼게 해준다.

나도 주방장/ 미꾸라지튀김

기름진 미꾸라지는 통째로 씹어라

남원추어탕의 진미로 탕과 곁들이는 튀김과 숙회를 빼놓을 수 없다. 탕은 씨알이 다소 굵은 것이 더 기름지고 진한 맛이 우러나 좋지만, 튀김과 숙회는 씨알이 잔 것들을 사용한다. 아직 뼈가 연하고 살이 부드러워 통째로 먹으면 감칠맛이 더 있기 때문이다.

맑은 물에 며칠 동안 담가 깨끗이 씻어낸 뒤 소금에 비벼 버끔까지 말끔하게 씻어낸다. 밀가루에 한 차례 굴려 꾸덕꾸덕해진 것을 다시 튀김가루 반죽에 넣어 기름에 튀긴다.


먼저 밀가루를 묻히지 않으면 튀겨놓은 뒤 튀김반죽이 벗겨져 모양새가 없고 맛이 덜하다. 튀기는 방법은 다른 튀김과 마찬가지로 두 차례 반복해야 바삭바삭한 질감이 더 살아난다.

고소하고 담백하게 씹히는 맛이 가정에서 어른이나 어린이들의 간식감으로 즐겨도 좋을 정도고, 탕을 먹기 전 소주를 한잔 곁들여 안줏감으로 해도 나무랄 데 없다. 특히 호남지역에서는 단백질과 칼슘이 듬뿍 든 영양만점의 별미로 손꼽히는 계절의 진미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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