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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약수로 끓여낸 씨암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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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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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0년 가깝게 닭백숙을 끓여온 김종화(59)씨와 대를 잇고 있는 장남 김태호(40)씨.
장마구름이 걷힌 새파란 하늘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고, 구름 사이로 내려쬐는 햇살은 살이 데일 듯 따갑다.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절기상으로도 이미 가을의 문턱인 입추(入秋)를 넘어서 본격적인 결실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휴가 또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시골집에서는 추석 때나 다시 만나게 될 가족들을 떠나보내며 씨암탉이 상에 오른다. 삼계탕감보다는 훨씬 자란 암탉들로 뱃속에 알이 들어앉기 시작한 것을 잡아 황기와 수삼, 밤, 대추를 넣고 찹쌀을 배보자기에 싸서 함께 넣거나 닭을 삶은 국물에 따로 죽을 쑤어 곁들인다. 어느 것이나 식약(食藥)을 방불케 하는 진미들이다. 삼계탕에 비해 살이 넉넉해 닭고기맛을 즐기기 좋고, 맛과 영양가로도 한결 앞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농촌살림도 많이 변해 누구나 이같은 호사를 누리기가 쉽지 않게 됐다. 그래서 도시에서 가까운 토속음식점들이 맛과 향수를 대신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서울에서 이천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에서 잠시 벗어난 설봉산약수터집(031-635-4878)은 가족이 함께 방문해 고향집 분위기에 젖어볼 만한 곳이다. 휴가기회를 놓친 가족들이라면 하루쯤 피서를 겸해 다녀와도 좋을 것 같다.

사진/ 약수에 삶아낸 맛이 한결 담백하다는 닭백숙.
경기도 이천의 주산격인 설봉산 중턱에서 3대째 60년 넘게 살고 있는 가족들이 엮어내는 닭백숙맛이 남다르다. 씨암탉은 처음에는 산자락에 풀어놓아 먹이며 닭백숙을 냈지만 지금은 계곡의 오염을 줄이기 위해 이웃한 면에서 위탁사육해온다. 설봉산약수로 정성스럽게 끓여내기 때문에 특색있는 맛을 낸다.

매일 1∼2차례씩 잡아오는 신선한 닭은 약수에 담가 핏물을 완전히 씻어낸 뒤, 손으로 꼭꼭 주물러 도살 때 경직된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 솥에 앉힌다. 세심한 닭관리와 아무리 가물어도 수량이 줄어드는 법 없이 솟아오르는 약수의 수질이 맛의 비결이라고 한다.


백숙에는 암탉만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약냄새를 줄이고 순수한 닭맛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 인삼과 밤을 넣지 않고 황기와 엄나무, 마늘과 생강만을 넣어 한결 담백하고 고소하면서 부드럽다. 시원한 물김치와 야채류를 곁들여 닭고기를 다 먹고 나면 찹쌀죽을 내오는데, 1마리 2∼3인분이고 가격도 2만5천원대로 삼계탕에 비해 크게 부담이 없다.입구인 설봉공원에 도자기엑스포 행사장이 들어서 다소 혼잡하지만 산길로 접어들면 말 그대로 별천지다. 나무그늘 아래 펼쳐놓은 평상에 앉아 약수로 더위를 식히거나 숲길을 걸어 정상부근인 산사까지 잠시 올라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는 나들잇길이다. 가는 길에 물통을 하나쯤 들고가 약수를 길어다놓고 시원하게 물맛을 즐겨도 좋고 차를 끓이면 차맛이 한결 좋아진다.

나도 주방장/ 닭불고기

고추장에 비벼 숯불에 구우면…

설봉산약수터집이 별미로 내는 음식이 바로 닭불고기다. 굽는 닭은 수탉이라야 육질이 탄력이 있다. 닭을 깨끗이 다듬어 살을 말끔하게 벗겨낸 뒤, 고추장에 마늘과 생강, 파 등을 갈아넣고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꼭꼭 주물러가며 비벼 즉석에서 숯불에 굽는다. 신통하리만큼 닭냄새가 없다. 뿐만 아니라 담백한 고추장양념이 누구든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입맛을 돋운다.

뼈없는 춘천닭갈비나 주물럭닭갈비 등 유사한 닭요리들과도 차별되는 맛이 난다. 특별한 노하우는 따로 없고, 금방 잡아온 신선한 닭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은 닭살을 벗기기 전에 찬물에 담가 핏물을 충분히 씻어내고 꼭꼭 주물러가며 살을 펴주면 닭고기의 부드러운 맛이 한결 더 살아난다.

가정에서도 이같은 방법으로 닭불고기를 만들어 별미요리로 즐기면 가족들은 물론 손님상을 차릴 때 술안줏감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살을 발라낸 뼈는 은은한 불에 푹 삶아 건져내고 국물에 죽을 쑤거나 칼국수나 생라면을 삶아 후식으로 내놓으면 상상 밖의 별미가 될 수 있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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