맵기에 더욱 시원한 면발
등록 : 2001-08-02 00:00 수정 :
사진/ 주인 박영철(51)씨와 부인 백명자(40) 씨.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에 의해 소개된 함흥냉면은 본래 추위를 이기기 위한 음식이었지만, 모든 것이 편해진 요즘은 오히려 한여름에 더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강한 자극과 향신료에 익숙해진 이른바 ‘패스트푸드 세대’의 입맛에도 맞아떨어져 함흥냉면을 파는 곳은 대부분 자리가 비좁다.
오장동 함흥냉면골목과 함께 함흥냉면의 3대 메카 중 하나로 꼽히는 ‘명동함흥냉면’(02-776-8430)은 함흥냉면 ‘열풍’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하다. 1960년대 중반 문을 열어 개업 40년을 맞고 있는 이곳은 당시 명동거리를 주도했던 명동파(明洞派) 멋쟁이들이 즐겨 찾던 음식명소였다. 지금은 중노년의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됐지만, 당시 이들이 명동일대 패션가를 돌고나서 간식 겸 별미집으로 찾는 곳이 명동함흥냉면과 명동교자 또는 명동돈가스와 명동부대찌개 등, 주로 명동을 앞세운 음식점들이었다.
미식가들이 찾는 곳인 만큼 항상 민감한 감각으로 새로운 맛을 이끌어내야 했다. 이런 어려움이 오히려 줄곧 독특한 맛의 경지를 이어온 계기가 됐다고 한다. 같은 매운맛이지만 어딘가 상큼하게 입에 당기는 매혹적인 맛으로 토속적인 음식보다는 세련미를 갖춰내 고객으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냈다. 냉면맛은 물론 담아내는 그릇과 꾸밈까지 차별화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사진/ 두겹으로 된 보온그릇을 사용해 다 먹도록 시원한 맛이 그대로 계속되는 냉면그릇과 깔끔하게 담아낸 모습으로 눈맛부터 먹음직스럽다.
얼음물에 충분히 헹궈 얼음처럼 차가워진 국수사리에 빨갛게 무친 홍어회를 얹어 깊숙한 보온그릇에 담아내놓는 회냉면은 마치 아이스크림튀김을 먹는 듯한 느낌이다. 이마에는 땀이 송송 내솟으면서도 입 안은 시원한, 묘한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가위질하는 법도 없어 국수발이 다 빨려들어가도록 매운맛을 참느라 진땀을 뻘뻘흘렸던 추억 때문에 죽기 전에는 못 잊는다는 단골이 주요고객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요즘 들어 강한 맛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이 새로운 고객층을 이루면서 다시 매운 옛맛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고유한 함흥냉면맛을 만들어내는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공개하고 싶지 않아 억대의 사례금을 제시해오는 체인점 제안들을 모두 사절한 채, 횟감은 물론 양념류와 야채류를 국내 최상의 것으로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명동함흥냉면이 자랑하는 빨간 양념은 양념숙성고를 거쳐나와 생생하게 매운맛이지만 속이 쓰리거나 뒤탈이 없이 입맛을 살려낸다. 이 양념에는 30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또한 국숫발의 질감은 20∼30년씩 자리를 지켜오는 국수주방장들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라고 한다. 냉방시설이 완벽해 몸은 물론 입 안까지 시원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흘린 땀이 문 밖을 나설 때 한결 상쾌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이열치열의 효과를 실감하게 한다.
나도 주방장/ 양념다대기 매섭게 추운 함경도만의 양념 함흥냉면집 식탁에 빠뜨리지 않고 올리는 빨간 양념통은 회냉면이나 비빔냉면의 매운맛과 간을 더하는 데 사용된다. 일상적으로 ‘양념다데기’라고 부르지만 어원이 분명치 않다고 해서 다지기 또는 다진양념 등으로 고쳐부르기도 하는데, 아직은 들어도 귓맛이 어설프고 제맛이 나지 않는 느낌이다.
아무튼 함흥냉면의 톡 쏘듯 매운맛은 매섭게 추운 함경도지방의 기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홍어나 가자미, 명태 등 담백한 횟감에 비벼 제맛을 낸 뒤, 매끄러운 국수사리에 얹어 미처 씹을 겨를도 없이 훌훌 삼키면 속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뒷맛이 있어 웬만한 추위는 이길 만하다는 것이다. 또한 여름철에는 이열치열의 효과와 함께 더위를 잊게 해주고 입맛을 되찾아준다.
고추와 마늘은 물론 파와 생강, 과일즙을 비롯해 한약재와 향신료까지 30가지가 들어간다는 양념다데기는 일정한 저온에서 김치처럼 충분한 숙성과정을 거친 것이어서 부작용이 없다. 그래서 가능한 한 넉넉하게 떠넣고 겨자와 식초, 설탕가루 등을 가미해 입 안이 얼얼하고 땀이 송송 내솟을 정도로 맵고 얼큰하게 먹어야 함흥냉면 고유의 제맛을 느낄 수 있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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