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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그 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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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2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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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시원해지는 그 육수!

사진/ 얼음이 자박자박한 시원한 육수국물이 인상적인 을밀대 평양물냉면.
함흥냉면에 밀려 평양냉면집들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후식으로 평양냉면을 내던 갈빗집들이 하나같이 함흥냉면으로 바꾸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추세다. 덕분에 평양냉면 전문점들은 대개 20∼25년을 헤아리는 내력있는 집들로 정리됐고, 맛의 특성도 한결 뚜렷해졌다. 그러나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요즘은 평양냉면이 잃었던 인기를 되찾는 듯한 모습이다. 100% 고구마전분으로 만든 함흥냉면에 비해 평양냉면은 메밀가루에 전분을 약간 섞어 질감을 낸다. 쇠고기 양지머리나 사태살을 알맞게 삶아 지방을 말끔히 제거한 육수도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하다. 특히 저칼로리에 통변효과가 탁월해서 이상적인 여름음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의 이름난 냉면집으로 을지로4가 우래옥과 을지로3가 을지면옥, 무교동 남포면옥이 있고,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장충동 평양면옥과 남대문시장의 부원면옥, 마포 공덕동 을밀대, 송파구 잠실면옥, 구파발의 만포면옥 등을 들 수 있다. 내력으로 따지면 어디나 원조집으로 손색이 없는 음식명가들이지만 굳이 을밀대를 내세운 이유는 냉면집의 예스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냉면집들은 규모가 확장되고 기업적인 경양방침이 도입되면서 입구에 앉아 고객을 맞던 주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국수주방장과 조리사들이 줄지어 말아내는 냉면을 등떠밀리듯 먹고 일어서야 한다. 공덕로터리에서 서강대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을밀대(02-717-1922)는 옛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집이다.

사진/ 부인 이석남씨와 대를 잇고 있는 큰아들 김영실씨.
주인 김인주(65)씨는 한국전쟁 때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1970년 서울로 올라오면서 생업으로 냉면집을 시작했다. 이 냉면집이 30년을 넘어서면서 그는 큰아들 김영길(39)씨에게 대물림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들이 모두 나서서 남의 손을 거의 빌리지 않고 음식집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

을밀대는 살림집을 겸한 3층 건물이다. 1층은 고객들로 항상 비좁기 때문에 주방에 냉면솥과 냉면틀만을 남겨뒀다. 나머지 육수솥 등을 모두 옥상으로 올려, 가족들 외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노하우가 옥상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주인이 직접 말아내는 시원한 냉면에는 얼음이 자박자박 얹히고, 오이와 배를 채쳐 계란 반쪽을 함께 얹어준다. 먼저 계란 노른자를 국물에 풀고 겨자와 식초를 넣은 뒤, 냉면김치국물을 약간 가미해 맛을 돋우고 국물을 한모금 들여마시면 “아, 이거구나!”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금방 눌러내 메밀내음이 은은하게 감도는 부드러운 국숫발과 고소하게 씹히는 냉면수육맛은 을밀대 냉면만 엿볼 수 있는 각별한 맛이다. 냉면 5천원, 사리 2천원, 수육 2만원.

나도주방장/ 양지수육

수육에 소주, 그리고 냉면

사진/ 양지수육
을밀대의 또다른 맛은 육수국물에 자박하게 담겨나오는 양지수육이다. 양지수육 맛으로 이만한 데가 없고, 냉면보다 수육맛에 자주 찾는다는 고객들이 있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꼭 알맞게 삶아놓은 한우양지머리를 저며 싱싱한 파채와 마늘을 곁들여내는데, 파를 몇 조각 얹어 간장소스에 찍어먹는 맛이 일품이다. 버글버글 끓는 솥에 쇠꽂이로 구석구석을 찔러보며 육감으로 익혀낸다는 양지는 건져서 채반에 얹어 서늘한 그늘에 한나절쯤 건조시키며 자연스럽게 식혀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손님상에 낼 때 결을 비껴가며 얇게 저며 육수솥에 한번 헹궈 육수 국물을 깔아주는데, 다 먹도록 팍팍하지 않아 좋고 부드러우면서 담백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여운이 그냥 맨입에 먹어도 좋을 정도다.

두세명이 수육 한 접시로 소주를 한잔 하고 냉면을 먹으면, 수육과 냉면맛을 고루 즐기며 선주후면(先酒後麵)의 격식도 즐길 수 있어 더욱 좋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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