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보리밥 맛, 그립지 않나요?
등록 : 2001-07-18 00:00 수정 :
사진/ 감자가 한알 얹혀나오는 원조집의 옛날보리밥.
음식 찾아다니는 것이 직업인 연유로 종종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면 망설이지 않고 시원한 냉수에 보리밥을 훌훌 말아 먹으며 풋고추 하나 집어다 된장에 꾹 찍어 와작 씹으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있겠느냐고 대답한다. 대부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환하게 미소를 머금으며, 그런 보리밥맛을 내주는 집이 요즘도 있느냐고 되묻는다.
서울에서 다소 멀기는 하지만 장남보리밥집(033-435-2206)이라면 누구에게든 권할 만한 곳이다. 홍천에서 인제로 오르다가 인제군에 접어들기 직전, 강원도옥수수연구소와 쟝루이기념탑이 있는 도촌면 장남리 대로변에 있다. 서울에서 설악산과 동해안으로 나가는 길에 있는 수없이 많은 보리밥집들의 실질적인 원조집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 이 마을 태생인 이인옥(67)씨가 5남매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길가로 나앉은 바깥채를 개조해 휴게소매점과 함께 간이식당을 연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가까운 면사무소 직원들과 집 앞을 오가는 기사들의 점심식사로 이런저런 음식을 계절에 맞춰 냈는데, 특히 된장찌개와 쌈장을 곁들인 보리밥은 누구나 한번 맛을 보면 차라리 매점을 걷어치우고 음식을 전문으로 하라는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1985년 드디어 보리밥집 간판을 내걸었는데, 1그릇에 600원 하는 보리밥이 입소문으로 이어지며 그때 고객이 지금까지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사진/ 텃밭에 가꾼 청정한 쌈감을 따내는 이인옥씨와 아들 홍성삼씨.
밥을 짓는 특별한 비법은 따로 없다고 한다. 강원도 산골의 보리밥맛과 된장맛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먼저 보리를 삶아 소쿠리에 건져 선선한 곳에 내놓아 고슬고슬하게 물기가 가시면 큼직한 무쇠솥에 안친다. 그 위에 불려놓았던 쌀을 알맞게 얹어 밥을 짓다가 밥물이 잦아들 무렵 주먹만한 감자를 몇알 얹어 뜸을 푹 들이면 된다. 그러나 정성을 담기에 따라 맛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금방 솥에서 퍼 감자를 한개씩 얹어주는 밥은 구수한 내음이 가득 담겨 있고 부들부들하고 매끄럽게 넘어가는 밥맛이 한마디로 기막히다. 그 밖에도 맛이 각별한 몇 가지 이유는 더 있다. 기본적으로 6∼7가지가 오르는 찬에는 아삭아삭 연하게 씹히는 열무김치와 함께 가을에 넉넉히 담가 알맞게 익었을 때 꺼내 냉장해놓은 묵은 김치가 한여름에도 제맛을 내주고 있다. 또 유난히 싱싱한 쌈은 아들 홍성삼(38)씨가 텃밭에 농사지은 것으로, 겨울에는 하우스를 씌우고 장마 때는 비가리개를 해, 1년 내 직접 키운 청정채소만을 사용한다.
아무튼 깨끗한 밭을 골라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키우는 깨끗한 상추쌈맛은 한없이 먹어도 들어갈 것만 같다. 곁들인 쌈장도 집된장을 보리 삶은 물에 풀어 간을 맞춘 뒤 양파와 매운 고추를 넣고 자박자박하게 끓여내는데 입에 착착 붙는 맛이 가히 일품의 경지다. 보리밥 1인분 4천원.
나도주방장/청정상추와 쌈장 된장에 풍기는 보리향기 20년 노하우를 지닌 원조집의 보리밥맛과 쌈장맛은 미리 알고 가면 더욱 제맛나게 즐길 수 있다. 1천여평에 달하는 텃밭에서 가장 깨끗한 밭을 골라 퇴비를 깔고 농약과 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장마 때는 덮개를 덮어 비까지 가려 화초 가꾸듯 키워낸다.
층층이 올라가며 알맞은 크기에 잎새를 골라 따내는 붉은 상추와 연하고 고소한 맛이 뛰어난 녹색 상추 등 2∼3가지 상추와 치커리, 야생씀바귀 등 5∼6가지의 쌈을 모처럼 마음놓고 즐길 수 있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텃밭을 구경해볼 만도 하다.
특히 이씨의 남다를 정성이 담긴 쌈장은 옛맛이 그대로 살아 있어 중노년의 어른들은 누구나 향수에 젖게 된다. 강원도 출신 인사들이 집 앞을 지날 때면 잊지 않고 찾아들어와 맛을 되새기며 칭찬해주고 간다는 것이다.
집된장은 그대로 끓이면 너무 짜서 쌈장이나 반찬으로는 제맛이 안 나고, 맹물에 풀어 간을 맞추면 맛이 자칫 싱거워진다. 그래서 보리밥을 주식처럼 먹던 옛날 어른들은 보리삶은 물로 된장을 풀어 자박자박 물기가 졸아붙을 정도로 끓여냈다. 구수한 보릿물이 된장맛을 제대로 살려내 풋고추와 감자만 몇알 썰어넣어도 입에 착착 붙는다는 것. 이씨의 쌈장맛은 이같은 옛맛을 그대로 실감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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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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