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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도가니, 입에 달라붙는 고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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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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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도가니만을 삶아 뭉근하게 뜸을 들여 낸 대성집 도가니탕.
햇볕이 작열한다는 말이 실감난다. 땀에 젖거나 에어컨 바람 속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 자칫 몸은 탄력을 잃고 살결이 약해지기 쉬운 계절이다. 이런 때 잘 끓인 도가니탕은 시기적절한 먹을거리가 될 수 있다.

소를 함부로 잡을 수 없었던 시절, 황소 한 마리에서 고작 4∼5인분 나온다는 도가니는 아무나 먹는 게 아니었다. 설렁탕이나 곰탕에 비해 월등하게 비싼 값을 치르고 먹는 도가니는 남자들이 피로회복제쯤으로 즐겼다. 하지만 요즘처럼 쇠고기가 흔해진 세상에 여전히 남자들만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도가니는 실은 남자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요긴하고, 젊은 직장인들이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할 영양소들이 고르게 들어 있다. 그래서 도가니탕집의 주고객이 여전히 중노년층이지만, 그래도 간혹 젊은 직장인들이 단체로 몰려앉은 틈새에 여성들의 모습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도가니는 점액질이 단단하게 뭉쳐진 젤라틴성분(아교질)의 무기질덩어리다. 기름진 듯하지만 지방질은 거의 없고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을 비롯해 칼슘과 철분, 유황, 마그네슘, 칼륨 등 무기질성분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양소들로 구성돼 있고, 칼로리가 낮은 이상적인 식품이다. 천하의 별미인 곰발바닥과 녹용, 자라, 오골계, 해구신 등과도 기본성분이 흡사하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피부의 탄력이 떨어지고 거칠어지거나, 혈색이 어둡고 내분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또 강정의 효과를 기대하고 오는 중노년의 남성고객들에게는 주인이 알아서 우신(牛腎)과 우랑(牛囊)을 얹어주기도 하는데, 심리적인 효과가 작용된 탓인지는 모르지만 하체에 힘이 실려 걸음을 걸을 때 무릎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피로회복에도 빠른 효과를 본다고 한다.

사진/ 2~3대를 잇는 주인 이춘희(54)씨와 딸 정은희(31)씨.
독립문 앞 지하도에서 2∼3분 거리인 서울시 교북동 대성집(02-735-4259)은 도가니 하나로 50년 가까운 내력을 쌓고 있는 정통 도가니탕전문집이다. 도가니 이외에 일체 다른 것을 넣지 않고 순수한 도가니국물에 말아내는 탕국맛이 가히 일품이다.

큼직한 곰솥에 도가니를 한솥 넣고 알맞게 삶아 도가니는 건져놓고, 뽀얗게 우러난 도가니국물은 은근한 불에 올려놓고 걸쭉해지도록 뜸을 들여가며 무와 대파, 마늘 등을 넣고 맛을 돋운다. 삶아놓았던 도가니를 손님이 들 때마다 국물에 한번 더 집어넣었다가 뚝배기에 담아낸다. 조미료를 전혀 안 넣지만 감미로울 정도로 부드럽게 당기는 깊고 은은한 맛이 사골이나 정육 삶은 국물과는 전혀 다르다. 입술이 착착 달라붙는 고소한 국물 때문에 대부분 그릇을 기울여가며 밑바닥에 남은 한 방울까지 말끔하게 비우고 일어난다.

탕과 함께 삶아놓았던 수육을 안줏감으로 내고, 새벽에는 도가니국에 선지를 삶아넣은 우거지 해장국을 내는데 역시 별미다. 가격도 오래 전에 정한 그대로 도가니탕 7천원, 도가니수육(1접시) 1만6천원, 해장국 3천원이다.


나도 주방장/ 도가니수육

진미 음미하고 건강 덤으로

도가니는 소의 무릎과 발목의 연골 주변을 감싸고 있는 특수한 부위다. 생고기로 보면 한없이 부드러운 하얀 기름덩이처럼 보이지만 삶아놓으면 투명한 젤라틴성분임을 알 수 있다. 도가니 부위는 쉬지 않고 운동을 반복하는 접촉부위에서 완충작용과 마모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며 아무리 추운 혹한 속에서도 동상에 걸리는 법이 없다고 한다. 제대로 조리한 도가니는 실제로 어느 나라 음식에서나 별미에 속한다.

쫀득한 살점은 아무 냄새가 없이 부드럽게 양념맛을 잘 받아주고 저지방 저칼로리로 이상적인 먹을거리다. 특히 부드럽고 고소한 탕국물은 몸 속에 골고루 흡수되는 듯한 묘한 느낌을 안겨준다.

“뭉글뭉글해서 징그럽다”는 인식도 아녀자들의 접근을 막으려는 어른들의 흉계(?)가 아니었나 싶다. 건더기는 건져 상큼한 간장소스에 찍어먹고 고소한 국물에 밥을 말아 찬찬히 음미해가며 도가니탕맛의 진미를 터득하고 나면 건강은 덤으로 얻게 된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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