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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래기와 함께 고아낸 논미꾸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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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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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담백하고 깊은 맛이 특징인 구마산집의 추어탕 상차림.
머지않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몰려온다. 잠시 더위를 피하거나 맞서서 이겨내는 슬기가 필요하다. 매스컴도 피서특집으로 기발한 대안들을 다투어 내놓고 있다.

더위를 마냥 피해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겨내는 방법을 동시에 익혀두어야 한다. 땀을 적당히 흘리고 체력을 제때 보충해주는 일은 몸의 건강을 다지는 데도 바람직한 일이다. ‘으레 더우려니’라는 생각을 하고 체력으로 버티면 더위인들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때 음식물의 섭취는 참으로 중요하다. “식(食)이 약(藥)”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계절이다. 삼복에 보신탕이나 삼계탕집이 바빠지는 이유도 소화 흡수가 빠르고 기력을 보충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몸을 보하는 데 꼭 보신탕과 삼계탕만이 효과적이라는 법은 없다. 한창 식욕이 왕성할 때인 미꾸라지도 여름 보양식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구마산(舊馬山·02-782-3269)은 여의도 금융가에 이름난 원조추어탕집이다. 경남 마산이 고향인 칠순의 신복순(70) 할머니와 큰딸 하경옥(46)씨 등, 가족들이 나서 마산식 추어탕을 25년 동안 끓여오고 있다.

미꾸라지를 삶아 뼈를 가려낸 걸쭉한 진국물에 연한 배추시래기를 삶아 우려놓고 소금간을 해 푹 끓여낸 부드럽고 구수한 탕맛이 예사롭지 않다. 여의도에 사무실을 둔 정·재계 유명인사들은 물론, 젊은 직장인들까지 줄지어 찾는 집이고, 현직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 이만섭 국회의장과 함께 즐겨찾던 곳이다. 지금도 보좌관들이 이곳 추어탕을 포장해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을 정도다.

사진/ 칠순의 신복순 할머니와 대물림을 하게 된 큰딸 하경옥씨.
충청도지방에서 올라온다는 뱃바닥이 샛노란 논미꾸라지를 골라다 맑은 물에 며칠씩 담가 깨끗이 씻어낸 뒤 푹 삶아 뼈를 말끔하게 걸러내고,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채 두어 차례 물을 붓고 제맛이 우러나도록 장시간 푹 곤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은 구수한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나고, 여기에 삶아 우려놓았던 배추시래기와 숙주나물을 알맞게 넣고 다시 두어 시간 더 끓이며 마늘과 간을 넣는다.


신씨는 맹물도 정성을 들여 잘 고면 맛이 우러난다고 믿고 있다. 또 음식맛은 간에서 난다고 믿고 있어 아직도 간 넣는 일만큼은 누구도 손을 못대게 한다. 건더기와 간이 들어가 맑게 가라앉은 국물은 누구든 첫입에 반할 정도로 담백하고 고소하다. 순박하고 깊은 맛이 흠잡을 데 없다. 추어탕을 처음 접하는 젊은 여성고객과 어린이들까지도 한번 입을 대면 끝까지 그릇을 다 비우고 일어난다.

추어탕과 함께 빨간 총각김치와 배추김치, 새콤한 물김치와 부추겉절이, 짭짤한 갈치속젓 등을 함께 내고, 산초와 고추다진양념이 따라나온다.

추어탕과 내력을 같이하는 별미로 기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10여 가지의 양념에 재웠다가 석쇠에 구워내는 한우갈비도 추어탕 국물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따라서 추어탕과 함께 갈비를 추가로 곁들이는 것이 제맛을 즐기는 노하우다.

나도주방장/ 한우갈비석쇠구이

추어탕 국물과 함께 양념갈비를

사진/ 구마산 한우양념갈비.
추어탕은 전국 어디를 가나 내력있는 토박이 명문집들이 있을 만큼 한국사람들이 폭넓게 즐기는 음식이고, 지역마다 특색을 지닌 맛을 낸다.

구마산집은 한우양념갈비를 석쇠에 구워 곁들이는 방법으로 고유한 특색을 이뤄내는데 탕맛이나 갈비맛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고 절묘하게 어우러져 맛을 한층 더 높인다.

아마도 대부분의 단골고객은 따끈한 불판에 얹혀나오는 감미로운 갈비구이와 함께 은은하고 부드러운 추어탕 국물을 떠먹는 묘한 맛에 이끌려 10년, 20년씩 발길을 이어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10여 가지 양념에 재웠다는 갈비는 속까지 펴가며 기름을 말끔하게 걷어내고, 기름을 떼어내다 떨어지는 갈빗살은 덧붙이지 않고 그대로 구워 함께 얹어내는데, 맨입에 먹어도 입에 감치는 제맛이 난다. 1인분 2대를 기준해 1만3천원, 추어탕 1인분 6500원. 여러 해 전에 정한 가격이라고 한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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